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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 자택 옆집에 사는 이상규(73)씨는 “상도동에서 60여년 살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선에 나갈 때 당 대의원을 하면서 선거를 도왔다”면서 “퇴임 이후엔 아침 운동을 나가면서 마주치는 주민들과 항상 악수하고 안부를 묻는 게 일상이었다”고 회고했다.
평소 김 전 대통령의 산책길이었던 노량진근린공원 일대를 거닐던 배윤환(75) 씨는 “10여 년 전 쯤 건강하셨을 땐 한 달에 한 두 번씩 골목에서 마주쳤다”며 “어제 소식 듣고 많이 울고 술도 한잔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봉희설렁탕은 평소 김 전 대통령의 단골 식당이다. 출입문 앞에는 조기(弔旗)가 내걸렸다. 30년째 주방을 책임져온 김순봉(65·여) 씨 역시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속상하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 씨는 “국수를 삶아서 설렁탕 한 뚝배기에 가득 드리면 남기지 않고 다 잡쉈다”면서 “대통령 임기 중에도 자주 들르셨고 식사 후 꼭 주방에 들러 악수하고 가셨다”고 전했다.
김 씨는 김 전 대통령에 얽힌 일화도 소개했다. 20여년 전 봉희설렁탕집은 설렁탕 장사가 잘 안 되자 갈비로 식당 메뉴를 바꾸려고 불판 테이블 설치 공사를 하고 있었다. 마침 가게를 들린 김 전 대통령은 “나 설렁탕 계속 먹고 싶소. (메뉴 바꾸지 말고) 원래대로 돌려놓으쇼”라고 했다고 한다. 김 씨는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대통령의 맛집으로 알려지자 하루아침에 가게에 손님들이 몰려 전화위복이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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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 회원 A(53·여) 씨는 김 전 대통령과 13년간 배드민턴 복식 파트너를 이뤘다고 했다. 그가 기억하는 김 전 대통령은 상대편 네트 앞에 셔틀콕을 떨어뜨리는 ‘드롭’에도 능했지만 스매싱’이 주무기였다. 일부 회원에게는 ‘○○씨 앞으로는 나한테 코치를 받으시오’라고 우스개를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A씨는 “김 전 대통령은 새벽시간 모인 30여명의 회원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악수를 하면 덕담을 나눴는데 대화가 끝날 때까지 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며 “새로 들어온 회원까지 분별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 우리는 그를 각하라고 불렀고 김 전 대통령도 회원들에게 존칭을 썼다”고 회고했다.
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는 김소라(45·여) 씨는 “정이 참 많으셨다. 회원의 경기를 눈여겨봤다가 ‘잘치네. 많이 늘었네’라고 칭찬하기도 했고 실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나보다 못치는구만’ 하면서 농담도 던지셨다. 더 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고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던 동호회 회원 중 일부는 눈물로 두 뺨을 적시기도 했다. 또 다른 한 회원은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신 데도 손이 부드럽고 따뜻했다”고 했다. 동호회 회원들은 오는 24일 오후 김 전 대통령을 조문하러 갈 계획이다.
김 전 대통령은 2013년 4월 감기 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이후 이 배드민턴클럽을 찾지 못했다. 배드민턴 클럽 맨 끝 쪽에는 김 전 대통령의 지정 코트가 있다. 이 코트 옆 작은 방에는 김 전 대통령의 전용 의자가 자주색 담요에 덮힌 채 오지않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에서 안 미끄러지고 잘 왔노”하며 묻는 고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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