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주지사이자, 미 최연소 주지사 타이틀을 거머쥔 헤일리는 원래 트럼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섰던 인물이다.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 당시 마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을 지지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다음 달인 12월 상원의원들의 요구를 수용, 헤일리를 유엔대사에 지명했고, 이듬해 1월 말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취임했다. 헤일리의 후임으론 디나 파월 전 백악관 NSC 부보좌관, 리처드 그레넬 독일 대사 등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는 본인과 트럼프 대통령의 즉각적인 부인으로 후보군에서 제외됐다.
헤일리의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파월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 백악관의 중동정책 등을 주로 다뤄왔다. 이방카 트럼프와 가까이 지내면서 ‘이방카의 여자’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백악관을 떠난 뒤 올 2월 골드만삭스에 복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그(파월)는 내가 확실하게 고려 중인 인물”이라고 했다.
헤일리의 급작스런 사임 배경엔 개인적·정치적 판단이 아우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대로 정말 ‘6개월 전’ 사임 의사를 전해왔다면, 이른바 폼페이오의 ‘견제설’이 힘을 받는다. 폼페이오는 정확히 올 4월 취임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시절 헤일리는 말 그대로 외교안보팀의 ‘원톱’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북(對北) 강경파인 헤일리는 지난 1월 취임 이후 이른바 ‘뉴욕채널’을 무기로 대북정책을 좌지우지했었다. 4차례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결의안을 주도했다. 그러나 북·미 관계에 훈풍이 불고, 이후 대북정책의 전권이 폼페이오에게 넘어가면서 헤일리는 ‘허수아비’ 역할에 국한됐다.
한 외교소식통은 “폼페이오 취임 이후 헤일리는 늘 힘이 없어 보였다”며 “가끔 위로문자를 보내곤 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지난 5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뉴욕방문 당시 폼페이오는 헤일리가 아닌 차석대사 관저에서 만찬을 열었는데, 이는 폼페이오가 헤일리를 견제한 결정적인 장면이었다”고 회고했다. 실제 두 사람은 잠재적인 대권(大權) 잠룡으로 분류돼왔다.
일각에선 금전적인 문제를 짚기도 한다. 장기간의 공직생활 탓에 110만달러(12억 5000만원) 규모의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헤일리 대사 부부의 연 수입은 17만달러(약 1억9000만원)로, 미국에선 많은 편이 아니다. 이와 관련, CNN방송은 “비슷한 커리어의 인물들이 연간 100만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모습을 봐왔을 것”이라고 했다. 개인 비리가 발목을 잡았을 수 있다. 실제 헤일리 부부가 올해 7차례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사업가의 럭셔리 전용기를 얻어탔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향후 대선 가도에 ‘트럼프 행정부’ 출신 이력이 도움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을 수도 있다. 아직 3개월이나 더 ‘직’을 유지할 것이면서 굳이 11·6 중간선거 직전에 ‘사임’을 공식화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와 관련, 헤일리는 2020년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몸담았던 브렛 브루언은 “유엔대사들은 임기를 채우는 게 일반적”이라며 “그녀는 민주당이 이길 중간선거 후 행정부의 일원이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2020년이 아니라면 2024년 대선을 준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