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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에 있는 풍림파마텍은 최소주사잔량(LDV·Low Dead Volume)을 적용한 백신 접종용 특수주사기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LDV 주사기는 약물을 투여할 때 주사기에 남아 버려지는 백신 잔량을 최소화한다. 1회분(명)당 주사 잔량이 일반주사기는 84마이크로리터(μL) 이상이지만, LDV 주사기는 25μL 이하다. 특히 풍림파마텍의 LDV 주사기는 이를 4μL까지 줄였다. 일반주사기로는 코로나 백신 1병당 5회분까지만 접종할 수 있지만, 풍림의 LDV 주사기를 이용하면 1병당 6회분 이상이 가능하다. 이 주사기를 사용하면 가뜩이나 부족한 코로나 백신을 20% 증산하는 효과가 낼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의료기기 업체 중에서는 이처럼 25μL 이하 주사잔량 성능을 갖춘 주사기를 만드는 곳도 있었지만, 풍림파마텍 주사기는 화이자 등 해외 코로나 백신 회사들이 요구하는 주사잔량 성능과 찔림 사고를 방지하는 안전가드 기능까지 갖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주사기 사용을 의무화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주사기 몸체와 바늘이 붙어 있는 기존 제품과 달리 ‘루어락’(Lure-Lock·주사기와 바늘 분리를 막는 장치) 형태로 쉽게 분리해서 버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화이자 등 여러 백신회사들은 이런 점에 주목해 풍림파마텍 측에 주사기 공급이 가능한지를 타진했다.
화이자 등이 요구하는 성능을 갖춘 LDV 주사기를 개발했지만 문제는 생산량이었다. 1999년 설립된 풍림파마텍은 해외 제품에 주로 의존하던 주사기와 시술용 기계 등을 국산화하면서 기술력을 쌓은 강소기업이지만, 대량생산 체계까지는 갖추지 못했다. 당시 풍림파마텍이 생산 가능한 LDV 주사기는 최고 월 400만개에 불과했다. 전 국민이 코로나 백신을 2회씩 접종한다고 가정하면, 최소 1억개 이상의 주사기가 필요한 상황에서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이 때 중기부와 삼성전자가 나섰다. 앞서 코로나 진단키트와 마스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스마트공장을 지원해 생산량을 늘리는 노하우를 가진 삼성 측이 지원을 약속했다. 처음에는 기술탈취를 우려하던 풍림파마텍도 중기부와 삼성의 설득에 마음을 돌려 스마트공장 도입을 결정했다. 조희민 풍림파마텍 대표는 “기업인으로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며 중기부의 제안을 수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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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놀라웠다. 월 400만개에 불과하던 풍림파마텍 LDV 주사기 생산량은 한 달 만에 월 1000만개로 2.5배나 늘어났다. 정부와 대기업, 중소기업이 ‘한 팀’으로 뛴 결과였다. 조희민 대표의 딸로 실무를 맡았던 조미희 부사장은 “일반적인 지원으로는 이런 성과를 내기가 어려웠다”며 “삼성과 한 팀처럼 일해 중소기업이 겪는 허들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고 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풍림이 보유한 우수한 기술력에 삼성의 스마트제조 노하우, 정부가 협력해 만든 ‘민관 협력’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풍림파마텍 주사기는 17일 새벽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다. 애초 긴급사용승인(EUA)를 타진했지만 오히려 정식 승인을 받아 해외 수출에도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는 평가다. 특히 전 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용 특수주사기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낸 쾌거라 더욱 의미가 크다. 일본의 경우 애초 화이자 백신 1병당 6회 접종을 전제로 구매를 했지만, 이에 알맞은 특수주사기를 확보하지 못해 결국 1병당 5회 접종으로 방침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풍림파마텍에는 이미 일본과 미국에서 2억개 이상 주사기 주문이 밀려 들어온 상황이다. 회사는 이달 내로 주문받은 주사기 수출을 진행할 예정이다.
조 부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백신주사기 수요가 많은 상황”이라며 “이번 FDA 승인으로 주사기 공급 부족에 한 몫 보탤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