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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전셋값이 떨어지면 매매값도 덩달아 하락할까. 전셋값이 매매값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과거 사례 통해 한번 짚어보자.
◇“전세 한번 더”…전셋값, 매매값 지지 역할 ‘톡톡’
서울·수도권 주택 매매시장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그해 하반기부터 가격 하락세로 전환한 뒤 2010년까지 극심한 침체기를 겪었다. 그런데 2011년 무렵부터 매매값은 어느 정도 안정기를 찾아가지만, 전셋값은 상승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통상적으로 집값이 떨어지면 전셋값도 하락한다. 2010~2011년 무렵에도 그랬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매매값은 가만히 있는데 전셋값이 저 밑에서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새 예전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을 훌쩍 넘어서서 그 비율이 70%를 웃돌게 됐다. 전세가율이 80%를 넘어선 곳도 적지 않았다.
이 때부터는 매매가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 매매값의 턱밑까지 오른 전셋값이 매매 시세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또 전세가율이 한창 오르던 때는 집값이 고점 대비 이미 많이 빠져 사람들의 매수 심리는 거의 사라진 상태다. 그러니 아파트 공급도 뚝 끊기게 마련이다. 공급이 많지 않으니 뛰는 전셋값을 막을 방도 또한 없다. 그래서 전셋값은 계속 오르고, 이 전셋값은 매매값을 떠받쳐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2011~2012년이 그랬다.
매매값이 오르는 시기에도 전세는 매매 시세를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집값이 크게 오르면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는다. 집값 상승 폭에 따라 규제 강도는 약할 수도 있고 강력할 수도 있다.
생각보다 강력한 규제가 나오면 시장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이 되면 매매값은 주춤하거나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때 전셋값이 바로 밑에서 가격 지지선 역할을 한다. 매매값이 잠시 떨어지면 매수세는 사라지게 되고 주택 매입을 고민하던 세입자들도 전세로 눌러앉게 된다. 전세 수요가 다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럼 다시 전셋값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게 된다.
전셋값 상승은 매매시장을 다시 상승 분위기로 바꿔놓을 수 있다. 서울의 경우 2013년부터 전셋값이 폭등한다. ‘미친 전셋값’이 부동산시장의 화두였다. 매수 심리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여서 매매 거래는 거의 없고 더 이상 투자자들이 집을 사서 전세를 놓지 않으려 했다. 전세 공급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금리까지 떨어져 기존의 전세마저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세난 속에서 전세 공급이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임차인(세입자)은 월세보다는 전세를 훨씬 더 선호하기 때문에 전세 물건을 찾으러 여기저기 떠돌게 된다. 결국 일부 지역의 경우 전셋값이 매매값의 90%에 육박하게 되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전셋값이 매매 호가를 서서히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2013~2014년의 일이다.
그 때도 매매 심리는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실제로 매매 거래는 거의 없고 전셋값은 계속 올랐다. 수요자들은 매매값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전셋값이 계속 오르고 때론 폭등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전셋값이 매매값을 뛰어넘을 수 없는 속성상 그 현상(전셋값 상승이 매매값 상승을 이끄는 현상)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전셋값이 매매 거래 하나도 없이 매매값을 밀어 올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식이다. 매매 시세가 4억원이고 전셋값이 3억5000만원인 아파트가 있다고 하자. 매매값이 더 이상 오를 일이 없다면 전세 시세는 아무리 올라봤자 4억원 아래에서 형성될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전셋값이 4억1000만~4억2000만원으로 올랐다. 전세 시세가 매매값(4억원)를 웃돈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전셋값이 매매가를 역전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이상 거래가 아니고서는 전셋값이 매매값을 넘을 수는 없다. 따라서 전셋값이 매매가보다 높게 형성됐다는 것은 매매 거래는 없지만 매매 호가가 전셋값(4억1000만~4억2000만원) 이상 더 올랐다는 얘기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전셋값과 매매값은 계속 상승하게 된다. 이는 한 건의 매매 거래 없이도 전세 거래만으로 매매값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장 하락기에는 전세 물량이 매매값 끌어내려
주택 경기가 상승 사이클에 진입하면 아파트 매매값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오를 수 있다. 이때 전셋값은 매매가의 상승폭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전세가율 하락이다. 매매가와 전셋값의 갭(차이)이 갈수록 크게 벌어진다. 가격 상승 안정기에는 평균 60~70%, 많게는 70~80% 수준이던 전세가율이 40~50%대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상승장에서는 가격도 많이 오르지만 분양 물량도 엄청 늘어난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건설사들이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분양 물량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급이 일시적으로 몰리게 되면 이들 물량이 입주할 때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임차인을 맞이 해야 하므로 전셋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셋값 하락에다 역전세난까지 발생하면 투자자들의 자금 계획이 흐트러지게 된다. 전세가율 70~80%를 염두에 두고 자금 계획을 세웠는데, 전셋값이 매매가의 40%에도 미치지 못하면 자기 자금의 투입량이 많아지게 된다. 추가 투입자금이 없는 투자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마이너스 프리미엄(분양가 이하의 매매가)에 분양권이나 입주 아파트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가 많으면 아파트값은 더욱 하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택 경기 사이클 별로 입주가 많더라도 다른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집값 상승기에는 아파트 입주 물량이 많아도 일시적인 역전세 상황만 벌어질 뿐 매매값은 쉽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폭등기가 어느 정도 지난 후의 대규모 입주는 바로 가격 폭락으로 이어질 기능성이 매우 크다. 상승 안정기에는 입주하는 새 아파트에 높은 프리미엄(웃돈)이 붙어 있어 일시적인 역전세난이 일어나더라도 투자자들은 충분히 버틸 여력이 있다.
그런데 폭등기가 지난 후 대규모 입주라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웃돈이 많이 붙지 않고 오히려 분양가 이하로 떨어진 마이너스 프리미엄 단지가 많은 지역의 경우 역전세난은 투자자들에게 큰 공포를 안겨준다. 그나마 서울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입주 아파트 매매 시세가 분양가보다 수억원 이상 붙은 곳이 많아 일정 정도 시세 차익을 보면서 보유 물량을 털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입주 물량 폭탄에다 마이너스 프리미엄에 시달리는 안산·안성·평택·오산 등 경기 남부권 지역의 경우 투자자 입장에서는 역전세난이 바로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고 주변 아파트의 전세가율이 40~50% 정도로 매매·전세의 가격 갭이 크기 때문에 역전세난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지 않고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가격 지지선 역할을 해주어야 할 전세가 오히려 매매 시세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부터 집값 폭락기가 본격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