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현 정부보다 친기업적인 정책을 펼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책임투자 강화가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은 만큼 급격한 변화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논란이 된 대표소송 개정 등에서 경제계가 기존보다 강하게 목소리를 낼 가능성은 크다는 설명이다.
◇관련 공약은 없지만…“경영계 목소리 강해질 것”
24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시절 공약으로 연금개혁 추진을 제외하면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이나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공약은 별도로 제시하지 않았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는 “당선인이 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얘기를 안 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수준일지 경영권을 좀 더 보장하는 쪽으로 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다만 문재인 정부 들어 확립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제도나 지침 등을 두고 경영계에서 반발이 많았던 만큼 정권이 바뀌면서 경영계 의견이 조금 더 폭넓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예상은 가능하다. 전 교수는 “재계에서 정당성에 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면 지금보다는 (경영계 쪽에) 유리해지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기준이 되는 수탁자책임 원칙이 도입된 것은 지난 2018년 7월이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원칙 가운데 하나인 지속가능성을 위해 투자 과정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하고, 기관투자자로서 기업과의 대화·주주권 행사 등 투자기업을 상대로 주주활동에 나서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 매뉴얼에 해당하는 수탁자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이 지난 2019년 초 만들어졌고, 상근 전문위원을 포함해 기금운용본부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 같은 전문위원회 체제가 지난 2020년 초 완성돼 지금까지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핵심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재 국민연금 전문위원회 등이 국민연금법에 명시된 만큼 이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것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 A씨는 “과거엔 책임투자나 주주권 행사가 진보 진영의 논리로 간주됐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정권에 따라 바뀌기 어려운 수준으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모든 이해관계자 이익 균형 있게 보장해야”
다만 이미 만들어진 조직이나 규정이 아니라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선 얼마든지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A씨는 “책임투자와 주주권 행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만큼 세부 각론이나 속도 조절 면에선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면한 사안 중 하나는 지난해 말부터 매듭을 짓지 못한 투자기업 대상 대표소송 강화 논란이다. 대표소송 권한을 수탁위로 이관할 경우 국민연금이 대규모 소송전에 나설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가 강하게 반발한 가운데 기금위에서 결론을 내지 못해 위원 일부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하기로 합의된 상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표소송 개정을 담은 수탁자지침 개정안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만큼 재계가 강경하게 얘기를 한다면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사용자 단체, 근로자 단체, 지역가입자 단체 위원이 다 참석하는 소위원회에서 충분한 토론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위원회는 다음 달 초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전망이다. 소위원회는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으며, 경영계 위원으로는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노동계 위원으로는 박기영 한국노총 사무처장, 지역가입자 위원으로는 참여연대 추천 이찬진 변호사와 소상공인연합회 추천 이한나 변호사가 들어간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한 재계 반발이 강해진다면 반대로 주주권 행사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경우에도 안건이 주주총회를 무사히 통과하는 경우가 많아 일각에서 ‘종이 호랑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최근 삼성전자(005930) 등의 주주총회에서도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안건이 무난히 통과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이번 정부가 강경한 태도로 나오면서 기업 입장에선 우려가 될 수밖에 없었다”며 “다만 새로운 정부에서도 기업 우호적인 태도가 오너 일가를 무조건 감싸주는 식이 되지 않도록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균형 있게 보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