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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 도전하세요" 대학 졸업식 연단 선 73세 경비원

유현욱 기자I 2017.02.16 19:06:14

성공회대 새천년관 경비원 김창진씨 졸업식서 축사 눈길
동료들과 십시일반으로 발전기금 2천만원 조성해 기부 인연

성공회대 경비원인 김창진(73)씨가 16일 서울 구로구 이 대학에서 열린 2016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성공회대)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최종학력이 고졸인 70대 경비원이 대학 졸업식 연단에 올라 졸업생에게 축사를 건넸다. 동료 미화·경비원과 조금씩 모은 학교발전기금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학교 측은 그에게 졸업생들을 위한 선물로 축사를 부탁했다.

그는 남우세스럽다고 거듭 사양했으나 학교 측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마이크를 쥐었다. 학교 경비원이 대학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사진=유현욱 기자)
16일 오전 서울 구로구의 성공회대 이천환기념관 존데일리홀에서 열린 2016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 이 대학 새천년관 경비를 맡고 있는 김창진(73)씨가 검정색 하의와 회색 상의. 그리고 상의 위에 초록색 조끼를 겹쳐 입고 나타났다. 평소 근무하던 모습으로 그대로다.

김씨는 학위수여식 15분 전 도착해 교수석 맨 앞자리 좌석에 10여명의 동료들과 나란히 앉아 말없이 식을 지켜봤다.

이정구 총장과 김근상 이사장의 축사가 끝난 뒤 김씨는 성큼성큼 연단에 올라섰다. 연단에 오른 김씨는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졸업생과 축하하러 온 가족을 향해 “졸업생 여러분, 저를 잘 아시나요”라고 말문을 뗐다. 뜻밖에 등장한 김씨에게 식장에 모인 졸업생들은 “네!”라는 힘찬 대답과 함께 박수로 환영했다.

김씨는 “나이든 사람들이 청소미화원과 경비방호원으로서 함께 모여 일하게 해준 학교에 늘 고마웠다. 전국적으로 대학이 학생 수가 줄어 어렵다고 하는데 작은 마음을 보태서 학교에 전달하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모았다”고 기부를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학사모를 쓴 학생들을 바라보며 “요즘 취업이 굉장히 어렵다고는 하지만 이제 아버지와 어머니 품에서 뛰쳐나갈 때가 됐지 않았느냐. 캥거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해 장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 어려운 때에 홀로서기 한번만 해도 성공하는 것”이라며 “홀로서기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쌓아 올라가면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짧은 축사를 끝맺었다. 졸업생과 학부모들은 김씨의 축사에 이날 행사 중 가장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졸업생을 대표로 나선 김선영(일어일본학과)씨는 김씨를 향해 “늦게까지 경비와 환경미화를 담당한 고마운 분들이 없었다면 졸업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경상북도 상주 출신인 김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향했다. 대학생이 되고 싶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미술을 혼자 힘으로 익혀 신문사에 취업해 일했다.

20년전 IMF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를 당한 뒤 지인의 소개로 성공회대 경비를 맡았다. 김씨는 성공회대에서의 17년 세월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고 했다. 부모님 일자리를 부탁한 학생부터, 연애상담을 해온 학생까지. 자식뻘 학생들이었지만 스스럼없이 지냈다.

김씨는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서화전에서 작품을 출품한 일을 가장 큰 추억으로 꼽는다. 김씨가 그린 ‘고양이’와 ‘어락도’라는 작품이다. 학위수여식이 끝나자 김씨는 종종걸음으로 자신의 근무지인 새천년관으로 향했다.

성공회대 경비원인 김창진(73)씨가 16일 서울 구로구 이 대학에서 열린 2016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이정구 총장에게 발전기금 200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성공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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