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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인권운동 상징'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사오보 별세(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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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 기자I 2017.07.13 23:11:39

중국 정부 인권탄압 비난 피하기 어려울 듯
아내 류사와의 애틋한 이야기도 눈길 끌어

중국 인권운동의 상징이었던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61)가 임종했다고 AFP가 13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6일 트위터에 올라온 류샤오보-류샤 부부의 모습. [둬웨이 캡처=연합뉴스]
[이데일리 뉴스속보팀]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중국 정부에 저항해 온 인권운동가 류사오보(劉曉波·61)가 별세했다고 AFP가 13일 보도했다.

류샤오보를 치료해온 선양 소재 중국의대 부속 제1병원도 “12일 오후부터 류샤오보의 병세가 극도로 악화돼 호흡 곤란을 겪었으며 신장, 간 기능이 떨어지고 혈전이 생겨 고통스러워하더니 13일 오후 숨졌다”고 밝혔다.

류사오보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중국을 떠나 해외에서 치료받기를 원했지만 중국 정부는 출국을 허락하지 않아 랴오닝성 선양 중국의대 제1병원에 입원해왔다. 유족들의 거부로 생명 유지를 위한 호흡관 삽관을 거부한 상태에서 결국 숨을 거뒀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서방 국가들로부터 인권 탄압국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류사오보는 작가이자 변호사, 교수로 활동하며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 당시 민주화 운동에 가담하는 등 다섯 차례나 구속수감되는 등 고초를 겪었으나 201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중국 인권 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져왔다. 톈안먼 사태 당시 미국에서 방문학자로 머물고 있던 중 귀국,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으며 당시 허우더젠(侯德建), 가오신(高新), 저우둬(周舵) 등과 함께 ‘톈안먼 4군자’로 불렸다.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체포된 이후 1995년 5월에 베이징 교외에 1년여 감금됐다가 1996년 10월에 ‘사회질서교란죄’로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3년간 복역했다.

복역 후 출소한 뒤에도 중국 인권문제와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미국과 홍콩 단체가 주는 인권상을 수 차례 받았고, 2003년 8월부터 중국 펜클럽 회장을 맡기도 했다.

2007년에는 해외 매체에 쓴 글이 문제가 되어 일시적으로 억류됐고, 200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발표된 ‘08헌장’을 계기로 체포돼 2009년 성탄절 때에는 베이징 제1중급인민법원에서 국가전복선동죄로 징역 11년형에 2년 정치권리 박탈형을 받고 또 다시 수감됐다. 2010년 수감 중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사실상 중국 반체제 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됐다.

류샤오보의 아내인 류샤의 행보에는 이목이 집중된다. 류샤는 1980년대부터 베이징 문화계에서 류샤오보와 교류하다 이후 부부가 됐다. 톈안먼 민주화 운동 이후 류샤오보가 첫째 아내가 그를 떠나자 옥중결혼을 했고, 이후 남편과 함께 인권운동을 같이 하다가 가택연금을 당하기도 했다. 류샤오보는 징역 11년형을 선고받는 법정의 최후진술에서 “지난 20년동안 가장 큰 행운은 아내 류샤의 희생적 사랑을 얻은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했고, 1996~1999년 감옥에서 300여 통의 편지를 아내에게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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