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김석동 위원장 "우리금융 민영화·정책금융 개편 아쉬워"

김재은 기자I 2013.02.25 17:00:02

30여년 공직생활 마침표.. 25일 이임식
가계부채·저축은행·외환건전성 등 대책 마련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영원한 대책반장’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는 어느 시구를 언급하며 ‘국민과 함께하는 든든한 금융’의 모습을 지켜보겠노라고 했다.

김석동 위원장은 25일 서울 세종로 금융위원회 20층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 정책금융 체계에 대한 재편이 남기고 가는 아쉬운 숙제”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가 소유한 지 10년이 넘은 우리금융그룹은 하루 속히 주인을 찾아 국제경쟁력을 갖춘 금융회사로 우뚝 서게 해야 한다”며 “우리금융 민영화가 한국 금융산업 지형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울러 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체계에 대한 밑그림도 다시 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위원장은 “신성장 산업과 해외 프로젝트 수주는 우리 경제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라면서도 “현재 정책금융기관들은 기관간 기능중복, 자본규모의 영세성, 콘트롤 타워 부재 등으로 미래 먹거리 분야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소관부처의 이해를 떠나 국익 차원에서 정책금융체계를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석동 위원장은 2011년 1월 금융위원장으로 취임해 저축은행 구조조정, 가계부채 대책 마련, 외환건전성 등에 대한 근원책 마련 등을 진행했고, 금융산업의 미래 먹거리를 위한 한국형 헤지펀드 출범, 중소기업 전용 거래소인 코넥스 시장 개설 등을 추진했다.

김 위원장은 공무원들에게 “현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냉철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닥친 문제들을 ‘정공법’으로 해결해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이임사 전문이다.

Ⅰ. 들어가는 말

사랑하는 금융위원회 가족 여러분!

저는 이제 금융위원장직을 끝으로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자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땀 흘려 온 지난 2년여의 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뜻 깊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아쉬움과 미련이 남겠지만

공직자로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위안 삼아

이제 막중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그동안 한결같은 자세로 묵묵히 헌신해 오신

금융위원회 가족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Ⅱ. 지난 2년에 대한 감회

<금융시장 안정 기반 구축>

제가 금융위원장으로 취임한 2011년 1월은

우리 경제에 거대한 먹구름이 밀려드는 시기였습니다.

세계 경제는 각국의 재정 위기로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국내 경제는 언제 터질지 모를 뇌관들로 적잖은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저는 이럴 때일수록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하며

환부는 신속히 도려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가올 폭풍우에 맞서 창틀부터 고정하고

처마 끝을 단단히 동여맬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취임 첫날 위험요소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과

가계 부채와 저축은행 문제, 외환 건전성 등에 대한 근원책 마련을 선언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였습니다.

특히 판도라의 상자 같았던 저축은행의 전면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은 금융시장뿐 아니라 우리경제를 위협하는 시한폭탄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2011년 상반기 범정부적인 가계부채 대책을 마련한 것 역시 우리 경제의 지속 성장을 위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1순위 과제’였습니다.

자본시장 전반에 만연했던 과도한 차입 경영을 정상화하고

투기세력이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일부 파생상품의 건전화를 꾀하는 것도 미룰 수 없었습니다.

외환은 늘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였습니다.

저는 외화차입 여건이 조만간 악화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금융회사에 충분한 외화유동성 확보를 지시했습니다.

그 당시 외화조달 시장은 외견상 양호해 보였기에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2011년 8월 미국 신용등급의 하향조정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이 급격히 경색되었을 때,

선제적으로 확보한 외화 유동성은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금융산업의 미래 먹거리 마련>

눈앞에 닥친 폭풍우를 대비하는 것과 동시에

저는 금융산업의 미래 먹거리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벼운 짐보다 넓은 어깨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한국형 헤지펀드가 출범하였습니다.

그리고 곧 중소기업 전용 거래소인 코넥스(KONEX) 시장이 출범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그동안 준비해 온

‘자본시장법’의 전면적 개정이 이루어지면

대한민국 금융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우수한 국내의 금융 인프라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금융영토를 전 세계로 넓혀가야 합니다.

저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해외진출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해외 금융협력 네트워크의 개척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우선 정서적 유대감이 크고 우리 인프라를 실제로 필요로 하는 아시아 지역에 눈을 돌렸습니다.

유목민 정신(Nomadism)이 면면히 흐르는 터키, 우즈벡, 카자흐스탄, 몽골 등에서는 ‘북방 금융협력 실크로드’를, 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에서는 ‘남방 금융협력 실크로드’를

건설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한 ‘범아시아 신흥국 금융협력 네트워크’는 대한민국 금융이 세계무대에서

웅비를 펼칠 전초 기지가 될 것입니다.

<세계경제 상황변화에 대한 대응>

위기가 닥치면 늘 그렇듯이 사회적 약자가

제일 먼저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바로 중소기업과 서민입니다.

그동안 금융의 온기가 골고루 퍼지도록

현장방문, 전면적 실태파악 등을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앞으로 중소기업 및 서민금융은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있어야 할 부분입니다.

경제상황의 어려움이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도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금융정책의 틀을 바꾸는 금융소비자보호법과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제정을 추진한 것은 앞으로 더욱 빨라질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남기고 가는 아쉬운 숙제>

그러나 아직도 못다 이룬 숙제가 있습니다.

정부가 소유한지 10년이 넘은 우리금융그룹은

하루 속히 주인을 찾아주어야 합니다.

민간의 자본과 창의를 바탕으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금융회사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이제 시장에 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금융 민영화가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지형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정책금융체계에 대한 밑그림도

다시 그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신성장 산업과 해외 프로젝트 수주는

우리경제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책금융기관들은

미래 먹거리 분야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

이는 기관간 기능중복, 자본규모의 영세성, 콘트롤타워 부재 등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이제는 소관부처의 이해를 떠나 국익 차원에서 정책금융 체계를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Ⅲ. 금융위원회 직원들에 대한 당부

사랑하는 금융위원회 가족 여러분!

30여 년간 제 모든 것을 바쳐왔던 공직을 떠나면서 여러분께 두 가지만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현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 주십시오.

현재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은 한마디로 어렵습니다.

그리고 상당기간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냉철한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닥친 문제들을 ‘정공법’으로 해결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와 금융 시스템 곳곳에

많은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남유럽을 강타한 유로 재정위기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 유럽의 중심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선진국은 계속된 위기대응으로 정책여력이 소진됐습니다.

신흥시장국도 장기간 지속된 불확실성의 여파로 점차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요국의 무제한적 양적완화 정책과 맞물려 환율갈등마저 야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내 사정이 이러한 대외 여건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가계부채 연착륙, 사회양극화 완화, 경제 활력 회복, 일자리 창출과 사회안전망 구축 등 어느 하나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닙니다.

대내외 여건이 본격적으로 개선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지금 상황이 일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된 문제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재의 취약한 상황에서 예측하지 못하는 변수마저 돌발적으로 터지면 상황은 현재보다

더욱 더 어려워 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기적인 미봉책이나 임기응변적 방편에만 기댄다면 나중에는 헤어나기 더 힘든 수렁에 빠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이임사에서

‘정직이 항상 최고의 정책’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정직과 용기를 리더십의 요체로 강조한 것입니다.

‘정공법’만이 현 상황의 돌파구가 될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면 필요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낱낱이 밝히고 이해를 구할 때에만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적인 공감대와 협조가 있어야만

위기를 극복할 근본적 대응책을 마련하고

신속하고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었던 것이 허물어지고

모든 것이 변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미래는 고정불변의 숙명이 아닙니다.

우리가 도전하고 개척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습니다.

급변하는 미래에 도전적이고

창의적으로 맞서길 부탁드립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지난 40여 년을 지배해 온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시장 원리’와 ‘양적 성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에서

‘시스템의 안정’과 ‘질적 성장’을 중시하는 새로운 시대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이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될지는

그 누구도 확실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경제의 질서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G1, G2를 넘어 어느 한 국가도 헤게모니를 갖지 못하는 G0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합니다.

국가간, 지역간 합종연횡과 경제블록화는

더욱 빠르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듯 그 크기와 폭을 가늠하기 어려운

미증유의 대변화가 지금 밀려오고 있습니다.

자칫 자만하거나 방심했다가는 그동안 힘들게 쌓아 온 우리의 성과가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도

변화보다 필름시장에만 안주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코닥사의 사례는 비단 기업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케인즈는 “경제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낡은 사고의 틀로는 미래를 얻을 수 없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어떻게 대비할지에 대한 정답은 누구도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열어갈 조타수입니다.

시대 조류의 변화를 정확히 읽어야 하고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갈 튼튼한 엔진을 준비해야 합니다.

유연한 사고와 기민한 행동으로 급변하는 미래에 대한 해법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특히, 금융의 미래에 대해서 철저하게 고민하고

금융의 새로운 틀을 설계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패러다임에 변화에 부합하는 금융제도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금융시장과 금융산업이 대한민국 경제의 병참(兵站)과 첨병(尖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미래의 성장동력에 대한 충분한 자금을 공급하는 한편,

금융산업 자체가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금융위원회 동료 여러분!

무거운 짐을 여러분 앞에 남겨놓고 갑니다.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공직에 있다는 것은

막중한 의무와 책임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일생에 단 한번 만날 수 있는 일기일회(一期一會)의 기회이자 행운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에는 틈이 있고, 모든 벽에는 문이 있다’는 말처럼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닌 능력과 애국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을 믿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역경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여 성취한 것임을 항상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출범하는 새 정부가

‘국민행복-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 가는데

여러분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합니다.

Ⅳ. 맺는 말

사랑하는 금융위원회 가족 여러분!

이제 저는 떠납니다.

바쁜 업무를 핑계로 세심하게 챙겨주지 못한 여러분 모두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여러분과 일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하였습니다.

공직은 떠나지만 또 다른 곳에서 여러분을 응원하며 ‘국민과 함께 하는 든든한 금융’을 만들어 가는

여러분의 모습을 지켜보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건승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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