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과의 외환시장 공조 체제를 갖추는 모습이 최근 잇달아 확인되고 있다. 대규모 대미 투자 이행을 앞두고 환율 변동성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두 달여 만에 실제 정책 공조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이 흐름의 출발점은 지난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원·달러 환율이 급등세(원화 약세)를 이어가자, 외환 당국 고위 관계자가 미국을 긴급 방문해 재무부 고위 관계자와 회동한 사실이 확인됐다. 외환시장 불안이 장기화되면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배경이었다. 한국은 앞으로 10년에 걸쳐 매년 최대 200억달러를 조달해 미국에 투자해야 하는데,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이 자금 조달 과정에서 국내 외환시장 불안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공개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와 투자 양해각서(MOU)에는 이미 ‘외환시장 안정’ 조항이 담긴 상태였다. 양국은 투자 이행이 외환시장 불안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하고, 외환시장 불안이 우려될 경우 한국이 자금 납입 규모와 시기의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고 문서에 명시해뒀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환율 레벨에서 대미 투자를 위해 연간 200억달러의 외화를 집행할 경우 환율 불안을 더욱 키울 수 있다”며 “대미 투자를 위해서라도 환율 안정이 필수라는 점을 적극 알리고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을 계기로 통화스와프에 버금가는 수준의 환율 안정 공조 메시지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이런 예상은 실제로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문지성 국제차관보는 지난달 12일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미 재무부 고위 관계자와 회동했는데, 시장에서는 이 자리에서 한·미·일 3개국 외환당국의 공조를 위한 밑그림이 구체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지난달 30일 밤에는 한·미·일 외환당국이 사상 처음으로 외환시장에 공조 개입하며 실제 행동에 나섰다. 한국과 일본 당국이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섰고, 미국도 ‘레이트 체크(구두 개입)’ 방식으로 이를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영향으로 지난 1일 장중 1559.2원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31일 장중 1418원까지 떨어지며 한 달 만에 141.2원(9%) 하락했다. 같은 기간 원·엔화 가치도 급등해 엔화는 달러당 157엔대를 기록했다. 문 차관보는 “한국이 미국, 일본과 공조했다”고 공식 확인하며 “한·일 양국이 수시로 연락하고 있다”고 공조 의지를 재확인했다.
다만 이번 환율 하락이 순전히 3국 공조만의 결과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는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이 꼽힌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10일 ADR로 조달한 265억달러를 경기 용인과 충북 청주 반도체 설비자금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순차적으로 원화 환전을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환전 물량이 8월에 집중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지난달 초순부터 원·달러 환율이 내림세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8월 법인세 중간예납을 앞두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수출기업들이 보유 중인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이른바 ‘네고 물량’이 늘어난 점도 환율 하락을 뒷받침한 요인으로 꼽힌다. 로이터통신은 스페이스X 기업공개(IPO)에 참여하려는 달러 환전 수요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서 한국의 환율 상승 요인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결국 미국이 대미 투자 이행을 원활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과의 환율 공조 체제를 실질적으로 구축해가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한국은 이미 미국이 선정한 투자처를 평가·관리할 한미전략투자사업관리위원회 구성을 마친 상태로,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프로젝트의 실행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원화 급등락이 반복되면 대규모 자금 조달 과정 자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는 만큼, 미국으로서도 한국과의 환율 안정 공조가 대미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번 3국 공조 이후 원화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앞으로 예정된 대미투자 1호 프로젝트 발표와 맞물려 한·미·일 환율 공조가 어떤 형태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마켓잉크 장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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