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전 부시장에게 277만원 상당의 책을 구입해 준 김모(53)씨가 검찰 조사를 받기 전 유 전 부시장과 입을 맞춘 사실이 있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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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수와 만나 책 어떻게 말할지 정해”
11일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손주철)은 뇌물수수·수뢰후부정처사·부정청탁및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 유 전 부시장에 대한 2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금융투자업체 대표 김씨는 지난 2017년 유 전 부시장의 부탁으로 그의 저서 140권을 구입해줬다.
김씨는 이러한 책값 대납 사실이 문제가 될 지 몰라 사전에 유 전 부시장과 만나 말을 맞췄다고 밝혔다. 유 전 부시장이 뇌물을 받았다는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 사실이 폭로된 2019년 초에 유 전 부시장과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이다.
김씨는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앞선 검찰 조사에서 김씨는 “유재수 선배에게 잘 보이고 싶어 책을 구입했고 140권 모두에 유재수의 친필 사인을 받은 뒤 다시 되돌려받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내 말을 바꿨다. 유 전 부시장이 먼저 책을 사 달라고 부탁했으며 산 책은 모두 유 전 부시장의 처가에 배달시켰다며 진술을 번복한 것이다.
김씨는 허위진술을 한 이유에 대해 “유 선배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책을 구매한 부분이 걱정돼서 ‘제가 선배한테 저자 사인을 부탁했고 다시 돌려받은 것으로 하자’며 서로 얘기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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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의 핵심은 대가성 여부다. 유 전 부시장 측은 줄곧 “친해서 받은 것이라 뇌물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유 전 부시장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공여자들은 “오래 알아 친한 사이긴 하지만 대가를 기대한 건 사실”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앞선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자산운용사 대표 최모(41)씨 역시 금융위원회 국장으로 있던 유 전 부시장에게 향후 도움을 받을 수도 있기에 그가 요구하는 항공권 등 금품을 제공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날 김씨 역시 유 전 부시장에게 금품을 공여한 건 복합적인 이유에서였다고 밝혔다. 김씨는 “저처럼 펀드운영사를 운영하는 대표 입장에서는 (펀드에 출자해 줄) 기관투자자들을 많이 알아야 한다”며 “유 전 부시장에게 금융 관계자 소개를 기대했고, 향후 회사에서 발생할 문제에 대해서도 (유 전 부시장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고 했다.
실제로 김씨는 유 전 부시장에게 소개받은 기관투자자에게 펀드 자금을 출자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김씨는 유 전 부시장에게 관계자를 소개받은 것은 맞지만, 이후 자금을 출자받을 수 있었던 건 본인 회사의 투자실적이 좋아서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펀드운영사 대표가 기관투자자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는데, 본인을 만나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김씨는 “유 전 부시장이 금융위원회에 있어 거절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답했다.
◇유재수 부하직원 “그때로 돌아간다면 국장 말렸을 것”
한편 이날 재판에는 유 전 부시장이 금융위원회 기획조정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부하직원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담당관으로 일하던 A씨는 금융위원장 표창 후보를 관리하고 선정하는 담당자였다.
유 전 부시장은 항공권과 청담동 오피스텔 관리비를 대납해주고 동생을 취업시켜준 자산운용사 대표 최씨를 금융위원장 표창 후보로 추천한 혐의를 받는다. 최씨는 유 전 부시장의 추천을 받아 2017년 금융의 날에 금융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금융위원장 표창을 받은 기업은 금융감독원의 징계를 받게 될 경우 징계를 한 단계 낮추는 혜택을 받는다.
A씨는 법정에서 “유재수 전 부시장의 추천을 받아 최씨를 후보군에 올렸지만 표창 기준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수상할 만한 공적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다만 “유 전 부시장이 최씨로부터 항공권이나 골프채 등을 받은 사실을 전혀 몰랐고 알았다면 그런 관계에 있는 분을 추천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을 것 같다”며 “당시에는 그 관계를 몰라서 추천받은 최씨를 (다른 후보들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