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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기주 박순엽 기자] 31일 오전 수도권 전역에 내린 갑작스러운 폭우로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근무하고 있던 노동자 3명이 참변을 당했다. 빗물을 저장해 흘려보내는 터널 상류 구역에서 수문을 개방했는데, 이 사실을 모른 채 하류 구역에서 점검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물살에 휩쓸린 것으로 분석된다.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장치였지만 수문이 열리더라도 안에 있는 작업자로서는 이를 알 수 있는 장치가 사실상 전무해 사고를 키웠다. 특히 피해자 중 1명은 수문 개방 사실을 알리러 터널에 들어갔다가 함께 사고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노동자 3명 피해
서울 양천소방서는 31일 오전 8시 24분쯤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펌프장에서 노동자 3명이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고 밝혔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는 한국인 2명과 미얀마인 1명으로, 소방당국은 이 중 한국인 50대 협력업체 직원 1명을 가장 먼저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사망했다. 실종된 나머지 두 명은 구조가 진행 중이다. .
이 사고가 발생한 터널은 신월동 일대 저지대 침수 예방을 위한 지하 45m 깊이, 총 3.6km 길이의 시설로 이들은 빗물 저류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내려갔다가 터널에 빗물이 들어차면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는 10m 지름의 원형 터널 형태로 사고 당시 내부엔 수심 약 4m 정도의 물이 차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시설은 공사가 대부분 마무리된 상태로, 작업 차량을 수송할 수 있는 카리프트 추가시설 및 접속부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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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점검 들어갔다 폭우로 상류서 빗물 들이닥치면서 참변
이날 사고를 당한 작업자들 중 협력업체 직원 2명은 오전 7시10분께 목동빗물펌프장의 유지관리수직구를 통해 터널에 들어갔다. 일상적인 점검을 위해서였다. 시설의 하류에 해당하는 이 구역에는 당시 비도 오지 않았고 터널 안에도 빗물이 없었다는 게 현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후 7시40분과 7시44분께 터널 상류 부분의 수문이 열리면서 빗물이 하류로 들이닥쳤다. 이 수문은 일정 수위가 되면 자동으로 열려 빗물을 흘려보내게 돼 있는데 이 시간 수도권에 갑작스럽게 내린 기습 폭우로 해당 용량을 넘어서면서 수문이 열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7시38분 수문 개방을 통보받은 시공사 현대건설 측 관계자 1명이 터널 안 작업자에게 무전이 닿지 않자 이를 직접 전하기 위해 작업장으로 들어갔다가 함께 사고를 당했다.
실제 기상청에 따르면 양천구에는 7시16분이 돼서야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7시40분쯤 시간당 10㎜ 이상의 장대비가 내렸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일상 점검을 위해 근로자가 터널로 내려간 상황이었고 당시에는 비 예보도 없고 호우주의보도 없었는데 점검 도중 기습적으로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져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수문이 열려도 이를 알 수 있는 안전장치가 내부에 없어 참사가 커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제현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본부장은 “수문이 열렸을 때 내부 근로자가 알 수 있는 알람벨이 없었다”며 “시공 당시부터 없었던 걸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욱이 터널 내 작업자에게 무전도 닿지 않아 이를 알리러 들어간 직원도 참변을 당하는 등 시스템에 문제점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참극 막을 수 없었나…양천구청·현대건설 책임 떠넘기기 공방
또 이번 사고에서 논란이 되는 점은 일상적인 점검이었기에 작업자가 터널에 있을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수문을 수동으로 막을 순 없었는지, 막을 수 없다 하더라도 미리 대피시킬 순 없었는가다.
작업자 2명이 터널에 들어간 뒤 7시 31분 양천구 직원 등에게 수위가 높아져 수문이 개발될 수 있다는 내용의 통보했고 38분 현대건설에도 이 사실이 전달됐다. 현대건설 직원이 작업장에 들어간 50분까지 적어도 12분 가량의 시간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지상에서 터널을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정도로 알려졌다.
수문 개폐여부에 대해서는 양천구청과 현대건설이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양천구청은 원격조정을 통해 수문을 수동으로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양천구청 측은 현대건설 측 인력이 터널 내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 동안 자동으로 수문이 열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대건설 측에선 수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한이 자신들에게 없을 뿐더러 통보를 받은 뒤 확인을 했을 땐 이미 수문이 열렸다고 주장했다. 보통 7시 전후로 터널 점검을 하는 것을 양천구청이 몰랐던 것이 의아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양 측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책임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