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붉은웃음’ 시작점에서 펼쳐지는 장면이다. 러시아 극작가 레오니트 안드레예프의 동명 원작을 재해석하면서 1인 가구의 증가 속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청년고독사 문제를 추가로 녹여낸 작품이라는 점이 이목을 끈다.
전쟁에서 두 다를 잃고 피폐해진 영혼으로 돌아온 형과 그런 형의 모습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동생이 살아가는 1904년과 고독사의 순간을 맞이하는 청년과 그곳을 찾는 유품정리사가 등장하는 2024년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펼쳐낸다는 점도 돋보이는 지점이다. 전쟁의 비극을 현대의 청년 세대가 직면한 고립과 좌절의 문제로 교차시켜 시대를 초월한 청년 세대의 고통에 대한 고찰거리를 던진다.
등장인물 4명은 배우 윤성원이 홀로 연기한다. 윤성원은 흙바닥과 비닐봉지 더미를 나뒹굴며 광기와 공포에 시달리는 다양한 인물들을 감정을 폭발력 있는 연기로 보여준다. 윤성원은 그간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 ‘템플’, ‘벚꽃동산’, ‘이 불안한 집’, ‘전기 없는 마을’, 뮤지컬 ‘어쌔신’, ‘살리에르’, ‘햄릿:얼라이브’, ‘백만송이의 사랑’, ‘빨래’, 드라마 ‘더 글로리’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연기력을 뽐낸 배우다. 국립극단 시즌 단원으로도 활약한 바 있다.
작품 구성에 직접 참여한 윤성원은 19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오래전부터 청년고독사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글에 관심이 많았다”며 “1인극이다 보니 제가 관심이 있는 분야를 작품에 반영해보고자 했고, 가난 등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마주하는 상황이라는 점이 전쟁과도 맞닿는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윤성원은 이어 “연습을 통해 익숙해져 있는 동선에 맞춰 연출과 합의된 지점을 표현하는 연극이 아닌 그때그때 만나게 되는 감정의 순간을 표현하는 연극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을 하는 기분도 든다”고 했다.
작품의 연출은 연극 ‘손님들’로 동아연극상 신인 연출상과 두산연강예술상 공연 부문을 수상한 바 있는 김정 연출이 맡았다. 앞서 김정 연출은 러닝 타임이 5시간에 달하는 작품인 ‘이 불안한 집’으로 윤성원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김정 연출은 ‘붉은웃음’을 다큐멘터리적 성격의 연극이라고 소개하면서 “거대한 폭력에 짓눌린 청년의 이야기를 펼쳐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무언가를 바꿔보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은 아니라면서 “안타까운 죽음을 잠시나마 멈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작품을 준비했다. 같이 슬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야기하는 소박한 기도에 가까운 메시지를 품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붉은웃음’은 21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울 용산구 더줌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러닝 타임은 인터미션 없이 8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