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현행 제도가 ‘노조 길들이기’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조합원의 회계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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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회계공시는 ‘윤석열표 노동개혁’ 핵심 과제로 도입됐다. 고용노동부는 2023년 1월 새해 업무 추진계획에서 “노동개혁을 완수하겠다”며 10개 과제 중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첫째로 내세웠다. 산업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행위엔 법대로 대응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작 노사 법치주의 확립의 세부과제엔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가 맨 위에 등장했다. 윤 정부의 노동개혁 ‘1호 과제’가 노조 회계공시였던 셈이다.
정부는 노동조합법 시행령과 소득세법 시행령을 발 빠르게 개정하고 그해 10월 노조 회계공시 제도를 시행했다. 기존엔 조합비를 냈다는 확인서를 노조에서 받아 회사에 제출하면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15%) 혜택을 제공했지만, 제도 시행 후엔 조합원이 1000인 이상인 노조가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노동부의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에 회계를 공시하도록 바꿨다. 특히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에 가입한 개별 노조가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선 상급노조(산별노조)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이른바 ‘연좌제’다.
노동계는 노조 길들이기 수단이라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노조는 돈 관리를 제대로 안 한다’는 프레임을 덧씌웠다는 이유다. 기존 노조법(제25조)에서도 노조는 반년마다 회계감사를 시행하고 이를 조합원에게 공개해왔다. 한 노동계 인사는 “회계를 비조합원 시민에게 공개하는 것 자체는 문제 되지 않는다. 노조가 돈을 엉망으로 관리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또 다른 인사는 “대형 노조일수록 회계를 유용하면 내부 반대파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바로 경찰에 고발한다”며 “노조법은 감사결과를 ‘조합원’에게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데, 하위법령(시행령)을 개정해 비조합원에게까지 공개하게 한 정부 조치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자율성 보장..‘노조 퍼주기’ 여론도 의식한듯
이처럼 제도 도입 취지부터 노동계 반발을 불렀던 탓에, 이재명 정부가 노조 회계공시를 유지할지 폐기할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출범 후 정부가 노동안전 확립, 노동 사각지대 해소 등 노동친화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며 노동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노조 회계공시 유지 땐 노정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면서다.
정부가 정부 플랫폼(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이 아닌 노조 자체 홈페이지 등에 자율적으로 공시하도록 가닥을 잡고, 상위단체가 공시하지 않으면 소속 노조엔 무조건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지 않는 ‘연좌제’ 방식을 폐기하기로 하며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가 노동정책에도 반영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회계공시를 통해 노조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되 노조 자율성을 존중하고, 연좌제 방식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회계공시를 아예 없애는 것은 정부도 부담이 큰 상황이다.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곳 중 공시 대상에서 제외되는 곳은 종교단체 정도뿐이다. 노조가 ‘성역’이 아닌 만큼 세금 혜택을 받는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지워야 한다는 논리다. 정부가 내년 양대노총에 110억원을 지원할 예정인데, 회계공시마저 없애면 ‘노조 퍼주기’란 여론에 휩싸일 수 있는 점도 고려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노조 회계공시는 분명 노조 자주성을 침해하는 노조 통제 수단이었다”면서도 “기존 노조법에서도 회계를 공시해야 했으나 (조합원의 공시) 접근성이 떨어졌던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자체 홈페이지 등에서 손쉽게 살필 수 있게 하면 회계 투명성과 노조 자율성을 모두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노조가 공적 기능이 강화한 조직이 된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회계공시와 관련한 불이익 조치(세액공제 미부여)를 동일하게 두면 정책 정합성이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회계를 자유롭게 공개하라는 게 목적이라면 공시하지 않을 경우 따르는 불이익도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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