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김영란법 4대 쟁점 모두 합헌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민간인인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공직자와 같은 기준으로 규제하는 게 옳은가 여부다.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한국기자협회와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김영란법이 국가권력에 의해 남용되면 언론의 자유가 위축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 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언론인이 취재원과 만나는 등 일상적 취재활동에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사립학교 교원의 사학 자유도 침해받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법 시행으로 일시적으로 언론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지만 이는 의식개혁이 뒤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과도기적 현상에 불과하다”며 “법 시행으로 언론과 사학의 자유가 제한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배우자의 금품 수수 여부를 신고하도록 한 조항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지 여부도 논란거리였다. 하지만 헌재는 이 조항 역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다.
헌재는 “해당 조항은 배우자를 통해 부적절한 청탁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고지할 의무를 부과한 것 뿐”이라며 “양심의 자유를 직접 제한한다고 볼 수 없고 연좌제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부정청탁’이나 ‘사회상규’라는 개념이 모호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헌재는 배척했다.
헌재는 “부정청탁 의미에 관해 이미 많은 판례가 축적돼 있다”며 “특히 김영란법 입법과정에서 14개 분야의 부정청탁 행위유형을 구체적으로 열거해 의미가 모호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사회상규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형법 제20조에서 사용되고 있고 대법원이 그 의미에 관해 일관되게 판시해 오고 있어 달리 해석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식사비 3만원·선물 5만원·경조사비 10만원 등의 상한선을 법률에 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에 위임해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사례금이나 사교·의례 목적의 경조사비를 일률적으로 법률에 규정하기 곤란한 측면이 있다”며 “사회통념을 반영하고 현실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탄력성이 있는 행정입법에 위임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헌재, 법리분석보다 여론에 더 귀기울여
헌재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생기는 부작용 보다 우리사회가 얻는 공익이 더 크다는 큰 틀의 시각에서 이번 결정을 내렸다. 특히 우리사회 최후 갈등 조정자로서 법 자체의 흠결성 여부보다는 법 시행을 바라는 여론의 목소리에 더 집중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대다수 법조인들은 김영란법이 법 자체로서는 흠결이 많다고 지적해 왔다.
민간영역 중 언론인과 교원만 규제 대상에 포함 시켜 형평성 기준에 맞지않고, 배우자의 금품 수수를 신고해야 하는 의무가 헌법에서 보장한 양심의 자유 등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법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헌법학자를 포함한 대다수 법조인들은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헌재가 민간한 쟁점에 대해서는 법리 분석에 치중하기 보다는 여론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대상자 400만명..법 수정 없이 9월 28일 시행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김영란법은 오는 9월 28일 원안대로 시행되게 됐다. 당초 헌재가 일부 위헌이나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릴 경우 법 개정 작업 등으로 시행일이 변경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이 법의 적용을 직접 받게 될 사람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 124만명, 학교 교직원 60만명, 언론사 임직원 20만명 등 200여만명에 달한다.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약 400만명이 김영란법 적용대상이다. 이들과 업무 연관성을 맺는 사람들 수까지 감안하면 이 법의 시행은 국민 생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헌재의 결정과 상관없이 법 개정 절차를 밟을 수 있다. 현재 농어업 종사자들의 반발이 심해 농어촌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은 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반면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법 시행전에 개정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권은 그동안 헌재의 판결을 보고 행동을 하겠다는 입장을 취해왔다”며 “법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공감하지만 헌재의 판결이 내려진 상태에서 법 시행전 법 개정 절차를 밟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