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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별세]수송보국 외길..위기 때마다 과감한 투자로 '항공신화' 이끌어

피용익 기자I 2019.04.08 20:07:46

대한항공과 45년
민간 외교관 맹활약
순탄치 않은 말년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지난 2008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영국 대영박물관과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도 한국어 안내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세계 3대 박물관이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하게 된 배경에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조 회장은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조건으로 한 후원을 결정했다. 한국이 세계적인 문화 사업에 후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국가적인 위상도 높아졌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수송보국 일념으로 대한민국 위상 높이기에 헌신

세계 3대 박물관의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성사시킨 것은 조양호 회장의 애국심을 보여주는 일화다. 그는 한진그룹을 이끌면서도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일념으로 일생을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대한항공은 조 회장이 사장에 취임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선 1992년부터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는 현재 166대에 달하며, 일본 3개 도시만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으며,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다.

특히 조 회장의 경영 능력은 위기에서 빛났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으며, 1998년 외환위기가 정점일 때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했다. 9·11 테러 여파로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2003년에는 A380 초대형 항공기 구매 계약을 맺었고, 2005년에는 보잉787 차세대 항공기 도입을 연이어 결정했다. 이같은 선제적 투자는 2006년부터 회복된 항공산업 경기에 맞춰 대한항공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조 회장 주도로 만들어진 글로벌 항공사 동맹체 ‘스카이팀’은 2000년대 초반 항공업계의 변화 흐름을 잘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스카이팀은 19개 회원사가 175개국 1150개 취항지를 연결하는 대표적 글로벌 동맹체로 자리매김했다.

이같은 경영 능력은 2004년에는 대한항공이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항공수송통계 국제항공화물수송 부문 1위를 기록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당시 19년 동안 이 부문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해온 독일 루프트한자항공을 제쳤기 때문에 세계 항공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한항공은 2010년까지 6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 대한민국 항공산업 위상 바꾸기 위한 노력

조 회장은 1970년 미국 유학 중 귀국해 군에 입대해 강원도 화천 소재 육군 제 7사단 비무장지대에서 복무했다. 또한 베트남에도 파병돼 11개월 동안 퀴논에서 근무한 후 다시 강원도 비무장지대로 돌아와 1973년 만기 전역했다. 이같은 경험은 조 회장이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에 대해 눈 뜨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조 회장은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 자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왔다. 그는 1996년부터 는 ‘항공업계의 유엔(UN)’으로 불리는 IATA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한국 항공업계의 발언권을 높여왔다. 이를 계기로 세계 항공산업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한국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했다. 국제 항공업계에서 조 회장의 위상은 2019년 IATA 연차총회를 사상 최초로 오는 6월 서울에서 개최하는 기폭제가 됐다.

조 회장은 한국 항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고심했다. 2010년대 미국 항공사들과 일본 항공사들의 잇따른 조인트 벤처로 한국 항공산업의 중요한 수익창출 기반인 환승 경쟁력이 떨어지자 델타항공과의 조인트 벤처 추진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대한민국의 염원이던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서도 발로 뛰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1년 10개월 간 조 회장은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으로 약 64만km(지구 16바퀴)를 이동했다. 그 동안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110명 중 100명을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해 평창 유치 결실을 맺었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 한진해운 청산과 갑질 논란으로 순탄치 않은 말년

그러나 조 회장의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은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경영인들의 잇따른 오판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2013년부터 구원투수로 나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다. 2014년에는 한진해운 회장직에 오르고, 2016년 자율협약 신청 이후 사재도 출연했다. 이같은 전방위 노력은 채권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한진해운은 2016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 청산됐다. 육해공 글로벌 물류 전문 기업의 한 축이 무너진 것이다.

조 회장은 정성을 쏟아온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외압에 의해 물러나기도 했다. 그는 정부로부터 “물러나 주셔야겠다”는 사퇴 압력을 받고 2016년 5월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아픔을 겪었다.

가족과 관련된 악재도 연달아 터졌다. 2014년에는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태로 논란의 중심에 섰고, 지난해에는 차녀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의 ‘물컵’ 사태로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도 직원 폭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잇단 갑질 논란은 조 회장의 대한항공 회장 연임 실패로 이어졌다. 지난달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연임을 반대했고, 소액주주들의 표를 모은 시민단체에서도 소액주주들의 표를 모아 반대표를 행사했다.조 회장은 이 소식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8일 새벽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폐 질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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