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숍서 업무 관련 토의하면 노동시간…음주·장기자랑 시간은 NO

박철근 기자I 2018.06.11 20:27:45

회식은 원천적으로 노동시간 ‘불인정’…거래처 합류시 해석 달라질 수 있어
가이드라인 나왔지만…“현장의견 반영 어려워..보완책 지속 나올 것”
고용부 “구체적 사안, 지방노동관서·콜센터에 문의해달라”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세종= 이데일리 박철근 김소연 기자] 직장인 A씨는 입사 후 처음 실시하는 1박2일 일정의 회사 워크숍에 참석했다. 명목은 회사발전방안을 위한 의견수렴이었지만 실제 회사 발전방안에 대한 토의는 2시간 남짓. 나머지 시간은 친목도모를 위한 음주와 부서별 장기자랑 등의 순서로 이뤄졌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1박 2일간의 워크숍에 참석했지만 A씨의 1박2일 일정 중에 노동시간으로 포함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두 시간에 불과하다. 정부가 주 52시간 노동제 시행을 앞두고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서다. A씨는 직장 선후배간의 친목도모도 좋지만 고작 두 시간밖에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 1박2일의 워크숍이 반드시 필요한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가 11일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노동시간 해당여부 판단기준에 대한 지침을 발표했다.

제도 시행(7월 1일, 300인 이상 사업장 대상)을 불과 20일 앞두고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늑장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에서는 7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다는 정부의 발표만 있을 뿐 이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현장의 혼란이 커진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부의 노동시간 인정여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현장의 의견을 모두 반영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보완책이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김왕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기자설명회에서 “어떤 나라도 노동시간 인정여부에 대해서는 법률이나 정부 지침으로 정하지 않고 각 사례별로 판단한다”며 “정부가 일률적인 지침을 발표하는 것이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의 행정해석이나 판례를 참고해 조금 더 일반화해서 발표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각 사업장별 구체적인 궁금증은 각 지방노동관서와 콜센터에 문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워크숍 토의는 노동시간 ‘인정’·식사는 ‘불인정’

A씨의 사례처럼 사내 워크숍이나 세미나에 참석한 경우도 일부만 노동시간으로 인정토록 함에 따라 앞으로 기업 현장 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고용부는 “워크숍이나 세미나의 경우 목적에 따라 노동시간 인정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사용자의 지휘·감독 하에서 효과적인 업무 수행 등을 위한 집중 논의 목적의 워크숍 및 세미나 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인정한다. 심지어 소정근로시간(1일 8시간)을 넘는 경우에는 연장근로로까지 인정한다. 하지만 워크숍 프로그램 중 직원 간 친목도모 시간을 포함한 경우에는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회사원 윤세형(42)씨는 “실제 현장에서 워크숍은 집중논의보다 단합의 성격이 강하다”며 “대부분 분임토의를 비롯해 논의시간을 거쳐 자연스럽게 회식 성격의 친목도모로 이어지는데 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회식은 노동시간 아냐”…거래처 직원 합류하면?

이날 고용부가 발표한 노동시간 해당여부 판단기준에 따르면 직장 내 회식은 상사가 참석을 강제하더라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김 정책관은 “통상 직장 내 회식은 노무의 제공과는 관련없는 사기진작, 친목도모 등의 성격이 강하다”며 “상사가 참석을 강요했더라도 근로계약상 노무제공의 일환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직장 내 회식 도중에 거래처 직원이 합류해 회식과 접대의 중간으로 자리의 성격이 바뀌면 해석이 달라질 여지가 있다. 김 정책관도 “거래처 직원이 합류하게 되는 등의 변수가 생기면 그 내용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회식 후 재해를 당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의 충돌도 예상된다.

현행 산재보상보험법에 따르면 회식 후 귀가도중 사고를 당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상에는 노무제공여부가 노동시간 인정여부에 대한 기준이 된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병희(34·남)씨는 “회식과 관련한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것은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것 아니냐”며 “하지만 회식이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회식문화에 대한 반감이 있는 젊은 직원들은 더더욱 직장 회식이 괴로운 자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정부 가이드라인, 현장 의견 반영에 한계 있어

전문가들은 이날 정부가 발표한 노동시간 단축 관련 가이드라인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보완책이 지속해서 발표될 것으로 예상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보완하기 위해 일자리안정자금을 시행했다”며 “(일자리안정자금도)지난해 현장 상황에 대한 조사 없이 시행하다보니 보완대책이 줄줄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도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정책방향은 분명하게 제시하면서도 시간을 가지고 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문제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현장의 의견을 다 반영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현장은 다양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정부는 짧은 시간에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을 것으로 본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보완책을 지속 발표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임시적으로 필요할 수는 있다”면서도 “노동시간 관련문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산업 현장의 혼란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니까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 같다”며 “이는 사실 악수(惡手)라고 본다. 정부가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은 경제규모는 성장하는 데 마치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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