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아버지 처음 본 아들, 65년만에 만난 부부…금강산은 눈물 바다

김진우 기자I 2015.10.20 18:00:56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 제가 아들입니다" 구구절절한 사부곡(思父曲)
65년 만에 만난 남편에 "보고 싶었던 것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지, 눈물도 안 나와"

[금강산=공동취재단·이데일리 김진우 장영은 기자] “아버지 자식으로 당당히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1950년 6월 충북 청원군 가덕리. 6·25 전쟁이 발발하고 한 열흘간 훈련을 받고 온다던 가장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불과 채 1년도 남편과 살지 못했던 어린 아내는 전쟁통에 뱃속의 아들을 낳고 60년 이상 홀로 자식을 키웠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란 아들이 아버지를 힘차게 부둥켜안았다. 남측 이산가족인 오장균(65)씨는 80대 노인이 된 아버지 오인세(83) 할아버지를 저 멀리서 한눈에 알아봤다.

오씨의 아내인 이옥란(64) 씨도 자신의 남편과 닮은 시아버지를 보며 “오신다. 저기 오셔”라며 반갑게 맞았다. 오 할아버지는 생전 처음으로 아들 부부의 큰 절을 받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손을 교차해 나란히 놓고 서로 바라보며 “닮았지?”라고 수차례 반복했다. “65년을 떨어져 있어도 낯설지 않다”고 아들이 말하자, 아버지는 주름이 그득한 얼굴로 환하게 미소 지었다.

65년 전 어린 아내였던 이순규(85) 할머니는 백발노인이 돼 남편과 재회했다.

이 할머니는 “보고 싶었던 것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지, 눈물도 안 나오잖아요”라며 “평생을 (떨어져) 살았으니까 할 얘기는 많지만 (3일 만에) 어떻게 다 얘기를 해. 나는 결혼하고 1년도 못 살고 헤어졌으니까…”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 제가 아들입니다.”

아버지 채훈식(88)씨를 만난 아들 희양(65)씨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생후 돌이 지났을 무렵 “잠깐 다녀오겠다”고 외출한 아버지와 65년 만에 재회했다. 아들을 강하게 부둥켜앉은 아버지는 자신의 중절모가 벗겨진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흐느껴 울었다.

남편이 내미는 손을 잡지 못한 아내 이옥연(88) 씨는 “이제 늙었는데 손을 잡으면 뭐해…”라며 지난 세월의 회한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아들 내외와 두 손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연신 기쁨의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 나 딸 정숙이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딸 정숙이 어떻게 생겼어요?”

3살배기였던 어린 딸이 65년 만에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딸은 자라면서 할아버지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 생각을 했다. 오정숙(68) 씨는 88세 노인이 된 아버지를 바라보며 “할아버지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 생각을 했었는데 할아버지랑 아버지 얼굴이 똑같다”고 신기해 했다.

아버지 리흥종 씨는 말없이 눈물을 닦으며 “소원 풀었어”라고 외마디를 던졌다. 딸 정숙씨는 이번 상봉에 고모 이흥옥(80) 씨와 함께했다. 리씨는 오른손은 여동생을 왼손으로는 딸의 손을 꼭 쥐고 연신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이번 이산상봉의 최고령자인 김남규(96) 할아버지는 북측에 있는 여동생 김남동(83) 할머니와 남매 상봉을 했다. 김 할아버지는 푸른색 체크 셔츠, 연두색 체크 넥타이에 베레모를 쓰고 여동생 앞에 섰다.

김 할머니는 “오빠가 옳은가(맞나)?”라고 물었지만 김 할아버지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김 할아버지는 고령으로 귀가 어둡고 최근 고통사고를 당해 건강이 좋지 못했지만 북에 있는 동생을 만나기 위해 만사 제쳐놓고 금강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2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제20차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에는 남북 500여 이산가족들의 눈물과 기쁨이 넘쳐 흘렀다. 행사장에는 남한에도 잘 알려진 북한가요 ‘반갑습니다’가 연신 흘러나오며 흥을 돋웠다.

전쟁통에 헤어진 부모자식, 형제자매의 얼굴을 보자마자 오열하며 흐느끼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으며, 가족관계와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이산가족들이 오래전 빛바랜 사진을 들고 나와 서로를 확인하는 모습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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