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만삭한 간호사들…中여성들 "정치선전에 우릴 이용말라"

김나경 기자I 2020.03.03 23:45:29

中매체 여성의 자기희생적 이미지 부각하며 애국심 고취하려고 하지만
中네티즌 "여성은 쇼를 위한 소품이 아니다" 반발
공청단 가상 캐릭터 웨이보 계정 10시간 만에 삭제 되기도

△ 중국 관영매체가 여성 간호사의 삭발 영상을 공개하자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여성의 몸을 선전의 도구로 활용하지 말라”며 반발했다. 사진은 유튜브( Youtube)에 올라온 동영상 캡처. [사진=Youtube 캡처]
[이데일리 김나경 인턴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를 막기 위해 파견될 여성 간호사들의 머리카락이 깎여나간다. 간호사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지만, 이들은 이내 주먹을 쥐며 “짜요”(加油·힘내자)라고 외친다. 1960년대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중국 간수지방 공산당 기관지인 간수일보가 게시한 동영상이다. 당초 간호사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강조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을 이 동영상은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

중국 메신저 위챗에는 이 영상과 관련 “여성의 신체를 선전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주장이 올라와 적어도 10만뷰 넘게 조회됐다. 10만뷰는 위챗에서 표시하는 최대 조회수다. 가오청 중국 사회과학대학 교수 역시 웨이보에 “이 여성들이 기꺼이 머리를 깎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전투에 나서는 전사이지 쇼를 위한 소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간호사들이 소속된 병원은 이는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며 자발적으로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는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공산당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의식이 표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정부에 대한 권위와 신뢰가 무너지면서 전통적인 중국 정부의 선전 매커니즘이 그 효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주목할만한 흐름 중 하나가 페미니즘이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여성의 자기희생적 이미지를 ‘정치서사’에 활용, 코로나19 대응 국면에서도 여성의 전통적 성 역할을 강조하는 영상을 제작·유통해왔다.

중국 국영 텔레비전(CCTV)는 최근 임신 9개월에도 여전히 일하고 있는 우한 간호사를 보도했다. 한 지역 신문은 유산 후 10일만에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 일하는 또 다른 의료인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웹사이트에는 “이러한 행동이 얼마나 엄마와 아이에게 나쁜지, 또 주변사람에게 위협이 되는지 알고 있느냐”며 “이것이 설사 본인들이 원해서 했던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언론은 이를 칭찬하기 보다는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해야 한다”고 비판하는 글이 게시됐다.

△중국 공산당 청년단이 만든 가상 캐릭터 ‘홍치먼’과 ‘장샹자오’
중국 공산당 청년단은 ‘홍치먼’과 ‘장샹자오’라는 두 가상 캐릭터를 내세워 당의 정책을 홍보하고자 했다. 홍치먼은 ‘붉은 깃발을 휘두르다’, 쟝샹자오는 ‘사랑스러운 나라’라는 뜻이다. 공산당의 정책을 나름 친근하게 홍보하고자 했던 이 시도는 그 즉시 반발에 부닥쳤다.

네티즌들은 쟝상자오 계정에 “당신은 생리를 합니까”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코로나19를 치료하기 위해 나선 간호사들이 생리대가 없어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결국 두 캐릭터의 웨이보 계정은 10시간 만에 폐쇄됐다. 상하이 여성연합에 따르면 중국 의사 중 절반이 여성, 간호사는 90%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에 중국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가장 일선에서 뛰는 여성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중국인들이 더욱 민감해졌다는 설명이다.

샤오밍 전 젠더학 교수는 청년들에게 다가가려는 공산당의 노력이 완전히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중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싹텄다고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토론과 논의들이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부가 막후의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페미니즘 담론을 통제하고 있다”며 여전히 중국정부의 입김이 크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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