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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과 인사보복을 당했다는 서 검사의 폭로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법원은 “범죄성립 여부에 대해 다툴 부분이 많다”고 판단하면서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성추행 진상조사단의 동력도 상실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안 전 검사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심리한 뒤 오후 7시쯤 이 같이 결정했다.
허 부장판사는 “사실관계나 법리적인 면에서 범죄성립 여부에 대해 다툴 부분이 많고, 그 밖에 현재까지 이루어진 수사내용과 피의자의 주거 등에 비추어 구속의 사유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안 전 검사장은 이날 오전 10시 15분쯤 남색 정장 차림에 연한 파란색 체크무늬 넥타이를 맨 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에 도착했다. 안 전 검사장은 ‘서지현 검사한테 인사 불이익 가했던 혐의 인정하나’라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법정에 들어갔다. 검찰에서 세 차례 조사를 받을 때보다 얼굴에 살이 없는 수척한 모습이었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조사단)은 지난 16일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위원장 양창수)의 권고를 수용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안 전 검사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외부 인사들로 이뤄진 수사심의위는 문무일(57·18기) 검찰총장이 지난 9일 구속영장 청구와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요청하자 지난 13일 ‘구속영장 청구 및 기소 권고’ 방침을 결정했다.
조사단에 따르면 안 전 검사장은 지난 2010년 10월 수도권의 한 장례식장에서 서 검사를 강제추행 한 뒤 지난 2014년 4월 정기 사무감사 자료 등을 활용해 2015년 8월 평검사 인사발령에서 부당한 전보조치를 한 혐의(직권남용)를 받는다.
조사단은 지난 2015년 당시 12년차이던 서 검사가 통상 3~4년 차 검사가 배치되는 통영지청에 경력검사로 발령 난 건 인사권이 남용된 결과로 안 전 검사장이 관여한 것으로 결론 냈다. 안 전 검사장은 지난 2015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검찰 조직의 인사와 예산을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재직했다.
조사단은 서 검사가 강제추행과 인사보복 의혹을 폭로한 지 28일 만인 지난 2월 26일 안 전 검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지만 문 총장의 보강수사 방침에 따라 지난달 5일과 26일 비공개 소환하는 등 총 세 차례 걸쳐 불러 조사했다.
그러나 조사단은 지난 2014년 수원지검 여주지청에서 근무하던 서 검사를 상대로 진행한 사무감사 결과를 결재한 당사자가 조희진(56·19기) 단장이라는 점에서 수사의 공정성이 우려된다는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위원장 권인숙)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조사단은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추천받아 위촉한 전문수사자문위원 2명과 함께 사무감사 부당성 여부를 정밀 검토한 후 수사심의위에 출석한 뒤 혐의 내용을 소명해 구속영장 청구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안 전 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조사단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조사단은 영장 기각 직후 “기각 사유를 검토 중”이라는 짧은 입장을 내놨다. 조사단은 이 사건을 마치는 대로 해산한다는 자체 방침을 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