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금감원 성과 브리핑인지, 회고전인지…"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성과 브리핑을 하라더니, 이건 거의 회고전 아니냐는 말도 나와요.”

최근 금융감독원 직원의 이 한마디는 기관 내 공기를 함축적으로 대변했다. 금감원은 이달 중순부터 다음 달 초까지 예정된 ‘4주 연속 브리핑 시리즈’를 두고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4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자본시장 현안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날부터 내달 5일까지 약 4주간 수석부원장과 부원장보 등 간부들이 차례로 나서 기관의 주요 정책 성과를 브리핑하는 일정을 예고한 상태다. 브리핑 주제는 IFRS17·K-ICS 도입 감독방안, 부동산 PF 정상화 추진 성과, 자본시장 혁신 흐름, 금융소비자보호 운영 현황 등이다.

금감원 내부에서 이 같은 방식의 릴레이 브리핑은 전례가 없다. 보통 현안 발생 시 개별 대응 차원에서 부원장급 이상이 언론 앞에 서는 일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사전에 주제를 정해 연속 공개 브리핑을 예고하는 방식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한 금감원 직원은 “금융위와 정책 공조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렇게 전략적으로 홍보 일정을 짜서 매주 성과를 발표한 적은 없다”며 “어디까지나 수장의 퇴임 시점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실무자는 “일선 실무자들은 매주 자료 만들고 내부 브리핑 준비하느라 사실상 정책 집행보다 포장 작업에 시간을 더 쓰게 된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윤석열 정부 초대 금감원장으로 검사 출신으로서는 첫 사례다. 그는 부동산 PF 건전성 관리, 사모펀드 사태 후속 정비 등에서 적극적인 정책 드라이브를 걸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치권의 시선이 그에게 옮겨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도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는 일 잘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권 일각에선 “이복현 원장이 자신의 성과를 정리하고 대외적으로 각인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뒤따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 원장이 법조인 출신이지만 금융감독 경험을 충분히 쌓은 만큼, 향후 금융위 내 요직이나 차기 정부 금융개편 과정에서 언급될 여지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릴레이 브리핑은 단순한 개인의 업적 정리 차원을 넘어서 조직 차원의 입지 강화 시도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금융위와 금감원을 통합하거나 금감원의 위상을 조정하는 정부조직법 개편 논의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이 “우리가 없으면 안 된다”는 역할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이번 브리핑 시리즈를 활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특히 부동산 PF 관리, 자본시장 대응 등은 앞으로 통합 금융감독 체계에서 어느 조직이 주도권을 쥘지를 좌우할 수 있는 민감한 영역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성과 정리는 중요한 작업이지만 타이밍과 방식에서 내부 공감대를 충분히 못 얻은 것 같다”며 “누가 보더라도 수장의 퇴임 스케줄과 일정이 겹치면서 해석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