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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문재인 정부는 국가폭력인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위원회(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서 권고한 제도개선안을 이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일어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정부 대표로 사과했다. 문재인 정부가 블랙리스트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 장관은 16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멀티플렉스홀에서 연 ‘사람이 있는 문화-문화비전 2030’ 발표에 앞서 “인간은 누구나 감시받지 않을 권리, 검열 당하지 않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국가가 지원에서 배제한 것은 물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침해함으로써 수많은 문화예술인과 국민들 마음에 깊은 상처와 아픔을 남긴 것에 정부 대표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정부가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사과한 것은 지난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의 최종결과 발표에 따른 것이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지난 정권에서 단체 342개·개인 8931명이 블랙리스트로 검열과 지원 배제 등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가운데 문체부는 진상조사위 최종결과 발표 다음날 블랙리스트 연루 의혹이 있는 윤미경 전 국립극단 사무국장을 예술경영지원센터 새 대표로 임명했다 하루 만에 취소해 문화예술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도 장관은 “우리가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 문화’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실현될 수 있기에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나갈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또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새로운 문화비전과 예술정책에 담았다”며 문화비전과 새 예술정책의 수립 취지를 함께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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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확보로 ‘사람이 있는 문화’ 만들 것”
문체부는 이날 새 정부의 문화정책을 담고 있는 ‘문화비전 2030’을 발표했다. ‘문화비전 2030’은 ‘사람이 있는 문화’라는 기조 아래 자율성·다양성·창의성이라는 3대 가치를 바탕으로 총 9가지 의제 37개 주요 과제를 담았다. △문화예술인·종사자의 지위와 권리 보장 △성평등 문화 실현 △문화다양성 보호와 확산 △공정하고 다양한 문화생태계 조성 △지역 문화분권 실현 △문화자원의 융합 역량 강화 △미래와 평화를 위한 문화협력 확대 △문화를 통한 창의적 사회혁신 추구를 주요 골자로 한다. ‘미투’ 운동에 따른 성폭력 규제, 남북문화 협력교류 기반 조성 등도 포함하고 있다.
정부는 ‘문화비전 2030’을 통해 향후 2030년까지 ‘일’이 아닌 ‘쉼’이 중심인 문화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킨다는 방침이다.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단축되고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여가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도 장관은 “‘문화비전 2030’의 중요한 전제는 충분한 여가의 확보”라고 말했다. 또한 “블랙리스트 사태를 통해 권력과 이해관계에 종속된 즉흥적인 정책 실행이 어떤 불행을 낳는지 봤다”며 “이번 ‘문화비전 2030’은 어떤 압력에도 흔들림 없이 지속 가능한 가치를 추구하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문체부는 문화비전과 새 예술정책, 그동안 발표한 콘텐츠·관광·체육 등 분야별 중장기 계획들을 근간으로 국민의 삶을 바꾸고 사회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실행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정책 실행력을 담보할 수 있도록 ‘문화비전위원회’도 구성할 예정이다. 도 장관은 “새 문화비전을 어떻게 추진하느냐에 따라 변화가 생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본다”며 “이를 되게 하는 것이 저의 과제이자 정부의 책임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