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빈익빈 부익부’ 심화…“대형사는 웃고, 중소형사는 침체”

박소영 기자I 2025.12.29 18:55:04

[2025 벤처투자 결산] ①
대형사 위주 분위기 반전시키지 못한 한 해
대형, 역대급 규모 펀드 결성하고 엑시트도
중소형, GP 자격 반납부터 자본잠식까지

[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빈익빈 부익부.’ 벤처캐피털(VC) 업계 관계자들이 올 한 해 시장 상황을 요약하는 단어로 꼽은 키워드다. 상위 대형사와 중소형·신생 VC 간 격차가 날이 갈수록 커졌다는 의미다. 대형사들은 펀드 결성과 엑시트(투자금 회수)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반면 중소형·신생 VC는 펀드 결성 일정이 밀리거나 어렵게 얻은 위탁운용사(GP) 자격을 반납하는 등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대규모 정책자금이 풀릴 내년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나서서 벤처강국 실현을 위해 각종 정책을 손보고 있고, 하반기부터 살아난 주식시장에 엑시트(투자금 회수) 분위기도 좋아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미 구조적 취약성에 직면한 중소형사가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비관적인 해석도 나온다. 꾸준히 펀드를 조성하기 어려운 중소형사의 특성상 안정적 현금흐름을 확보하지 못해 금세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진=픽사베이)


중소형사의 반란…협회장 선거에 기대 ↑

올 초 신임 VC 협회장을 뽑는 선거에 4인이 출마하며 창립이래 최초 다자 경선이 치러졌다. 그 결과 다른 후보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중소형사 출신인 김학균 퀀텀벤처스코리아 대표가 협회장으로 당선돼 주목받았다.

업계는 김학균 협회장 당선을 두고 “기존 대형사·주류 중심으로 굴러가던 협회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펀드 가뭄으로 중소형·신생 VC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협회장은 이같은 목소리를 반영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표심이 쏠렸다는 분석이다.

김 협회장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임기 내 퇴직연금 등 신규 출자자(LP)를 벤처시장으로 유입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벤처출자를 집행하지 않는 연기금·공제회들에 객관적 수익 성과를 제시해서 설득하겠다는 포부였다.

또 회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코스닥 시장 유동성 공급 확대를 건의하겠다고 했다. ‘코스닥 펀드’를 조성해 장기투자에 집중하는 기관 중심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벤처기업은 안정적인 성장 자금을 유치하고, 투자자는 투자금을 성공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시장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침체된 시장 분위기…대형사는 버텼지만

협회 중심으로 생태계 활성화를 이끌 제언이 대거 나왔다. 정부 역시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벤처강국’을 강조하며 VC 업계에 힘을 싣는 정책을 줄줄이 내놨다. 그러나 정작 업계 관계자들은 하반기로 갈수록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졌다고 토로했다. 여전한 고금리, 트럼프 관세 충격 등 거시경제 이슈로 국내외 자본시장이 정체됐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대형사는 펀드 결성을 완료하거나, 엑시트에도 성공하면서 무난한 한 해를 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증시가 역대급 강세장을 보이면서 대형사들이 포트폴리오 엑시트에 성공하는 사례가 많았다. 상장사들은 투자한 포트폴리오가 좋은 성과를 내 덩달아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반면 중소형사는 올해도 혹한기를 겪었다. 예컨대 모태펀드 GP로 선정됐지만 펀드를 결성하지 못해 자격을 반납하거나, 자본잠식에 빠진 곳도 있었다. 벤처투자회사 전자공시(DIVA)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 기준 7곳의 자격이 말소됐고, 8곳이 자본잠식 상태로 집계됐다.

국내 정치 이슈로 LP들이 상반기 예정돼 있던 출자사업을 대선 이후로 미루거나, 은행권이 위험가중자산(RWA) 규제로 벤처펀드에 대한 투자를 유보하는 등 자금 유입이 줄었다. 게다가 거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며 대기업 LP들도 곳간을 걸어잠근 탓이 컸다.

국내 VC 한 고위관계자는 “탄핵정국과 대선으로 국내 정치가 어수선한 시점에도 대형사들은 기존에 축적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묵묵히 투자를 집행했고, 하반기에는 기업공개(IPO) 시장도 풀리고 증시도 괜찮아 엑시트도 무난했다”며 “그나마 트랙 레코드가 좋은 대형사에는 LP 자금이 풀렸지만, 신생에 중소형사인 곳들은 이마저도 쉽지 않아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VC 한 대표는 “정부가 벤처 생태계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며 “경제 불확실성도 하반기로 갈수록 해결되는 측면이 있어 올해는 숨을 죽이며 버티고, 내년을 기대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경기가 완전히 풀리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 “내년에도 대형사 쏠림 현상이 이어지면 실적을 내지 못한 중소형사들은 조정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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