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EU "ILO 핵심협약 비준하라" 정부·국회에 서한 보내 압박

김소연 기자I 2019.03.06 20:04:46

EU 집행위 "ILO 핵심협약 비준…입법절차 촉구"
"FTA 혜택 공유하도록 노동권 보장해야" 지적
경영계에도 "노동기본권, 기업경쟁력 강화에 영향"
"분쟁 해결 절차 다음 단계 넘어갈 것" 경고

고용노동부 김대환 국제협력관(사진 오른쪽)과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 EU 대사가 지난 1월 21일 서울 중구 남대문 코트야드 매리어트호텔에서 열린 ‘한-EU FTA 무역과 지속가능발전장(章) 이행을 위한 정부간 협의’에 앞서 인사를 하며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유럽연합(EU)이 한국 국회와 정부에 노동자 단결권 보장을 위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조속히 비준하라고 압박했다.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국회에 공개 서한을 보내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했다. 국회에서도 서한을 보내면서 관련 입법 절차를 조속히 진행할 것을 압박했다.

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4일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과 이재갑 노동부 장관 앞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말스트롬 집행위원은 서한에서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의) 2개 핵심협약과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핵심협약 2개 등 4개 핵심협약을 비준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그는 “무역 관계는 상품과 서비스 거래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국제노동기준 등 무역 관련 의제에 관한 가치와 약속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며 “이런 약속은 노동자가 공정하게 대우받고 자유롭게 권리를 행사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의 혜택을 공유하도록 보장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U가 문제를 삼는 노동관련 의무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강제노동금지 △아동노동근절 △고용상 차별금지 등 지난 1998년 ILO 기본권 선언내용으로 국내 법·관행에서 존중 및 증진을 실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은 1991년 12월 ILO 정식 회원국이 됐으나 핵심협약으로 8개 중 4개를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결사의 자유’(87호·98호)와 ‘강제노동 철폐’(29호·105호) 등 4개 협약은 미비준 상태다.

한국과 EU가 체결한 FTA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章)’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U는 한국이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계속 미루자 지난해 12월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의 분쟁 해결 절차 첫 단계인 정부 간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

정부 간 협의는 오는 18일 종료된다. EU는 오는 4월 9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8차 무역위원회 이전에 한국의 입장이 긍정적으로 제시되지 않을 경우 전문가 패널 회부 등 다음 단계로 넘어 간다고 경고했다. 이는 우리나라가 무역과지속가능발전장상 노동규범을 이행할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말스트롬 집행위원은 “한국이 우리가 제기한 우려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했음을 조만간 확인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행 절차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EU 집행위원은 서한을 산업통상부 통상본부장과 고용노동부 장관을 수신인으로 하고, 문희상 국회의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참조인으로 지정했다.

고용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이 행정부뿐만 아니라 국회가 함께 해결해야할 사안이라는 유럽연합 측의 인식을 보여준다”며 “특히 노동조합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중인 점을 고려할 때 국회에서 이에 대한 입법절차를 신속히 진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사회적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놓고 노사가 논의를 진행 중이나 노사간 이견이 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한 공익위원 권고안을 발표했다.

경영계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려면 △대체 근로 전면허용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쟁의행위 찬반투표 요건 강화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 삭제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ILO 핵심협약과 직접 관련성은 없는 사안이다.

EU는 서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은 국제무역을 주도하는 모범 국가로 경제 발전과 교역확대가 노동권의 존중·증진과 동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제도를 ILO 협약과 일치시키는 것은 경제적인 의미도 있으나 실제로 노동기본권과 효과적인 사회적 대화를 보장하는 법과 관행을 사업장에 정착시킨 국가에서 기업들이 더 번창하고 경쟁력이 강화된다”고 덧붙였다. ILO 핵심협약 비준이 기업에도 이익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경영계에도 압박을 가했다.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기자회견을 열고 EU 집행위의 서한을 공개하고 “정부는 국제적인 망신을 더 당하기 전에 ILO 핵심협약을 조건 없이 즉각 비준하라”고 촉구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