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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대호 기자] ‘확률형 뽑기 아이템 정보 공개’를 법제화하려는 국회 시도에 게임업계가 반발했다. 지난 15일 한국게임산업협회가 게임법(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 전부개정안을 두고 “영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범한다”며 공개 의견을 냈다. 관련 의견서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실에 전달했다.
사실 뽑기 아이템은 해묵은 이슈다. 그동안 법제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으나, 업계가 자율규제를 만들고 이행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실제 법안엔 담기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기업에서 뽑기 아이템 운용 과정에서 일탈이 보고되고,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이 규제를 거듭 주장하는 등 업계를 향한 여론이 좋지 못한 상황이다.
게임업계는 “영업비밀”이라며 맞섰다. 고사양 아이템을 일정 비율 미만으로 제한하는 등의 밸런스(콘텐츠 균형)는 상당한 비용을 투자하고 연구하면서 얻은 대표적인 영업비밀이라는 것이다. 법안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종류별 공급 확률정보를 모두 공개토록 하면서 업계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뽑기하고 또 뽑고’ 컴플리트 가챠가 뭐기에?
쉽게 말해 뽑기 아이템은 이용자가 보물상자를 구매하는 수익모델(BM)이다. 구매한 뒤 뚜껑을 열기 전엔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운이 좋다면 게임 내 희귀 아이템, 이른바 대박을 노릴 수 있다. 희귀 아이템 중엔 0.0001% 뽑기 확률도 있다.
개별 아이템의 극도로 낮은 뽑기 확률에도 일부 비판이 쏠리나, 최근 뽑기 아이템 BM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에선 업계 자율규제로 금지하는 ‘컴플리트 가챠(뽑기 아이템을 뜻하는 일본어)’가 거론된다. 게임을 깊숙이 즐기지 않는 이상 일반 대중은 알기 어려운 BM이다.
컴플리트 가챠에선 뽑기 아이템 또는 재료를 모아서 다시 확률 뽑기를 거쳐야 한다. 아이템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그전에 들어간 비용과 노력 등은 사실상 제로(0)나 마찬가지다. 이용자 일부는 매몰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 계속 뽑기를 하는 상황이다.
최근에 리니지2M의 희귀 아이템을 제작하는 과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용자가 게임 내 특정 신화 무기를 제작하기 위해선 역사서 1~10장이 필요하다. 이 중 8~10장은 전설 레시피다. 이용자가 곧바로 얻을 수 없다. 희귀 재료가 필요하다.
이용자가 필드에서 재료를 무료로 얻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게 커뮤니티 반응이다. 이 경우 무작위 뽑기로 조각 10개를 모아 레시피를 제작할 수 있다. 조각 뽑기도, 모은 조각으로 레시피를 뽑는 과정도 역시 확률이다. 이용자가 확률 정보를 알 수 없다. 얼마를 더 들여야 아이템 완성이 가능할지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아이템의 뽑기 구조를 파헤친 한 유명 유튜버는 “이렇게까지 만들어야 하나”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또 관련 아이템 제작 시 수천만원이 소요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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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가 ‘확률 정보 밸런스는 영업비밀’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자, 이용자 커뮤니티에서 대번에 반발이 일었다. 셧다운제 당시엔 업계 입장을 대변하고 규제에 맞섰던 이용자들이 확률형 아이템만큼은 오히려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유료로만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만 자율규제로 정보를 공개할 것이 아니라, 그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법안엔 ‘유상으로 구매한 게임아이템과 무상으로 구매한 게임아이템을 결합하는 경우’도 포함해 확률 정보 공개를 명시했다. 법안대로면 컴플리트 가챠 과정의 확률 정보도 공개되는 것이다. 물론 컴플리트 가챠를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큰 상황이다.
게임업계를 십수년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한 인사는 “확률형 아이템 법제화에 무조건적인 반대를 주장하기보다는 자율규제 내용부터 강화해 소비자와 사회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 우선”이라며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직언직설로 유명한 위정헌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도 쓴소리를 보탰다. 위 학회장은 “영업비밀이라는 게 과거엔 하지 않았던 이야기”라며 “‘어느 정도 돈을 투입하면 되겠다’ 예측이 돼야 하는데, ‘눈감고 돈을 지르라’는 것 아니겠나”라고 비판했다.
위 학회장은 “있는 정보만을 그대로 공개하는 것인데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유저들의 불만을 보면 그동안 확률을 솔직히 공개했나, 실효성이 있었나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덧붙여 “정보 표시 의무 위반 시 CEO(최고경영자) 벌칙(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규정 때문에 반대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