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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기주 황현규 기자] “위안부 문제를 끝까지 해결해 주세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과 같은 김복동 할머니가 임종 직전 지인들에게 남긴 말이다. 한 평생을 위안부 피해 회복을 위해 싸워왔지만 김 할머니는 결국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지난 28일 오후 10시41분경 김 할머니가 암 투병으로 별세했다고 29일 밝혔다. 향년 93세. 지난 1925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940년 꽃다운 나이인 만 14세에 위안부로 끌려가 피해를 입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를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린 인물로 평가된다. 1992년 최초로 유엔인권위원회에 파견돼 위안부 사실을 증언했다. 1993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했다. 2000년에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서 원고로 참여해 피해 사실을 알렸다. 특히 김 할머니는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김 할머니는 암 투병 중이던 지난해 9월 휠체어에 몸을 싣고 외교부 앞에 나와 1인 시위를 펼쳤다. 당시 김 할머니는 “어떻게 일가친척도 아니고 얼굴도 모르는 우리를 보러 오지도 않은 사람들이 할머니들을 파냐”며 “전 세계에 돌아다녀도 우리나라 같은 나라는 없다”고 토로했다.
이렇듯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끝내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내 장례는 시민이 함께해 줬으면 좋겠다”는 유지에 따라 시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이날 김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교복을 입은 학생을 비롯해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조문 행렬을 이뤘다. 점심시간을 쪼개 빈소에 방문했다는 직장인 박모(57)씨는 “김 할머니에 대한 죄송한 마음으로 왔다”며 “역사의 아픔을 혼자 감내하신 할머니를 위해 우리가 해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교복을 입고 빈소를 찾은 서울 은평구 선정국제관광고 학생 김지원(17)양은 “친구들 5명과 함께 할머니를 보내드리기 위해 왔다”며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할머니들의 아픔이 빨리 치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휠체어를 타고 빈소를 찾은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는 김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다 “조금만 더 있다 가지”라며 조용히 말하며 이별의 슬픔을 내비쳤다. 또 다른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이거(위안부 피해 문제) 하나 해결하나 못하고 저렇게 서럽게 눈도 못 감고 하는 게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하는 문제고, 일본이 진상규명하고 사죄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날 문 대통령 역시 직접 빈소를 방문해 `나비처럼 훨훨 날아 가십시오`라는 문구를 조객록에 남겼다. 이 밖에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도 김 할머니의 빈소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