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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선위 결론 유보…금감원 주장 관철 무산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12일 임시회의를 열고 삼성바이오에 대해 미국 바이오젠에 부여한 에피스 주식 콜옵션 내용을 공시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고의로 누락했다고 판단하고 제재를 내렸다. 다만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자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분류, 공정가치로 인식한 것과 관련해서는 결과를 내리지 않았다.
당초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 논란은 2015년 종속회사이던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분류함으로써 공정가치로 인식, 기업가치를 크게 높였다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은 삼성바이오가 이 과정에서 고의적인 회계 위반, 즉 분식(粉飾)을 저질렀다고 보고 조사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의 국제회계기준 원칙에 따른 조치였다며 변론에 나섰다.
국제회계기준 자체까지 도마 위에 오르면서 회계업계에서는 이번 논란을 긴장감 있게 지켜봤다. 금감원과 일부 시민단체 주장대로 삼성바이오의 분식으로 결론 나면 대우조선해양(042660) 정도의 후폭풍이 불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증선위가 해당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회계업계는 ‘최악은 면했다’고 평가했다. 한 회계업계 고위 관계자는 “재판에 비유하자면 법원 역할인 증선위가 유죄 여부를 따져야하는데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판결을 내리지 않은 셈”이라며 “현재 증거만으로 판결을 내리기 어려워 금감원에 보완을 요청했는데 수정안 제출이 이뤄지지 않아 판단 자체를 유보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그는 “유죄, 무죄가 아니기 때문에 증거를 보충하거나 보완해서 가져오면 결과를 내릴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덧붙였다. 애초 금융감독원이 제기한 분식회계 의혹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삼성바이오 입장에서는 ‘고의로 에피스 가치를 부풀렸다’는 의혹에서는 한 발짝 멀어지게 된 셈이다. 한 공인회계사는 “금감원의 주장이 먹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사실상 삼성바이오측이 판정승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시 누락은 명백한 사실…회사·감사인 타격
에피스의 회계처리 문제는 사실상 ‘재감리’로 매듭지었지만 삼성바이오는 결국 분식회계를 피하지 못했다. 바이오젠에 부여한 콜옵션 공시 누락이 ‘명백한 회계기준을 중대하게 위반’했고 ‘그 위반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고의’로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융위 입장에서 현재 판단을 내리기가 애매한 자회사 회계처리 문제는 차치하고 사실 관계 파악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공시 누락에 대해 결론을 내림으로써 장기간 이어진 논란을 수습하고자 했던 의도가 보인다는 판단이다. 회계사회 관계자는 “자회사 회계처리에 대해서는 업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에 금융위 입장에서도 그대로 결정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업계에서는 금융위가 자회사 회계처리 결정은 유보하고 공시 누락에 대해서만 제재를 내리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많았다”고 전했다.
공시 누락은 명백한 회계 위반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한 회계 전문가는 “삼성바이오가 공시를 누락한 것은 명백한 사실로 다만 고의성 여부를 어떻게 결론 낼까가 관건이었다”며 “삼성바이오 입장에서는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감사절차 소홀이라는 지적을 받은 감사인 삼정회계법인 피해도 불가피하다. 삼정회계법인은 삼성바이오에 대한 감사업무제한 4년, 공인회계사에 대한 검찰 고발 등의 조치를 받았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법인 자체에 대한 고발이나 영업정지 조치가 없어 최악은 면했지만 4년간 감사업무 제한 등은 상대적으로 센 편”이라며 “향후 벌점까지 부여받을 경우 지정감사인 지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만큼 매출 감소라는 직접적인 영향도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