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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상징으로 불리는 김복동 할머니가 암 투병 끝에 지난 28일 늦은 오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다. 김 할머니의 생전 바람처럼 29일부터 시민장으로 치러진 이번 장례식에는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91) 할머니와 이용수(92) 할머니가 방문해 슬픔을 함께했다.
◇길원옥 할머니, 무릎 꿇고 멍하니 사진만 응시
이날 오후 2시경 길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날씨가 쌀쌀한 탓에 길 할머니는 목티에 목도리, 두꺼운 외투까지 걸친 모습이었다.
휠체어가 장례식장 난간을 넘지 못하자, 길 할머니는 조문객의 양팔 부축을 받고서야 빈소에 입장했다. 영정 사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길 할머니는 5분이 넘도록 말이 없이 김 할머니의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바라봤다. 길 할머니는 사진 속 김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기도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유가족과 조문객들은 고개를 숙여 눈물을 흘렸고, 간간이 울음소리가 새나왔다.
이어 주변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 길 할머니는 빈소 옆에 마련된 휴게실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이어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이 제공한 김 할머니의 ‘조문보’를 들여다보던 길 할머니는 조문보 앞에 적힌 “뚜벅뚜벅 걸으신 평화·인권운동의 길, 저희가 이어가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나지막이 읽어 내려갔다.
정의연 관계자가 “김 할머니 보니까 어때요?”하고 묻자 길 할머니는 말이 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어 길 할머니는 “조금만 더 있다 가지”라며 나즈막한 소리로 읊조렸다. 이를 듣자 정의연 관계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를 껴안았다.
한편 길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김 할머니와 나눔의 집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며 적극적으로 위안부 피해회복 활동을 해온 인물이다.
길 할머니 또한 김 할머니와 같이 재일조선학교에 관심이 많았다. 작년 태풍 피해를 당한 학교 학생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원금을 기부했다. 또한 매주 수요집회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의연에 따르면 길 할머니는 1928년 평안북도 희천에서 태어나 10대 시절 만주 하얼빈과 중국 스자좡에 끌려가 위안부 피해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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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를 주제로 다룬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인 이용수 할머니도 이날 오후 빈소를 방문했다. 앞서 길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주변의 부축을 받고 장례식장에 입장한 이 할머니는 영정 사진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이내 이 할머니는 “하늘나라 먼저 간 할머니들과 만나라”며 소리쳤다. 그러면서 이 할머니는 “아픈 데 없이 훨훨 날아가서 우리 좀 도와달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김 할머니의 별세가 실감 나지 않는 듯 지난 수요 집회 때의 모습을 회상했다. 이 할머니는 “우리 수요일에 봤잖아. 그때 고개도 끄덕거렸잖아. 근데 왜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할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대사관 앞에서 우리가 앉아서 외쳐야 해요?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요”라며 통곡했다. 이후 할머니는 성호경을 그은 뒤 분향을 마치고 빈소를 나왔다.
이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회복을 위한 의지도 내비쳤다. 이 할머니는 빈소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서럽게 눈도 못 감고 떠난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나는 200살까지 살아서 반드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겠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2007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일본군위안부 청문회장에서 위안부 피해사례를 증언한 인물이다. 이 이야기는 영화 <아이캔스피크>에도 소개가 된 바 있다. 위안부 피해를 고백한 이후에도 이 할머니는 수요 집회에 참석해 “우리가 침묵하면 세상도 침묵하고 변하지 않습니다”라며 위안부 피해회복 운동을 적극적으로 독려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