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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패권전쟁 속 커지는 총수 역할론…文 '사면' 결단 주목

이준기 기자I 2021.07.21 19:22:39

[가석방 가능성 커진 JY]①
이재용 부회장, 8·15 광복절 가석방 유력한 듯
美中 패권 다툼 등 복잡한 글로벌 정세 속…
경쟁자들 합종연횡 속 몸집 키워…삼성 '위기'
12월 사면론…대선정국 땐 정치적 부담 더 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이준기 신중섭 배진솔 기자] ‘찬성 7: 반대 3’

최근 각종 여론조사기관이 조사·발표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특별사면 및 가석방에 대한 대국민 여론이다. 일단 이달 26일이면 형기의 60%를 채운 이 부회장 가석방 요건은 갖춰진다. 내달 초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의 심사가 남아 있긴 하나, 8·15 광복절 가석방 심사 대상명단에 포함됐다는 소식까지 흘러나오는 등 가석방 가능성은 구체화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미·중 간 반도체 패권 다툼, 포스트 코로나 시대 등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비중, 그리고 총수 부재의 한계 등을 감안할 때 가석방을 넘어 사면이 이뤄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충분하다는 게 각계의 시각이다.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에 이목이 쏠리는 배경이다.

◇경쟁자들 몸집 불릴 때…삼성은 ‘제자리걸음’

물론 삼성전자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 힘입어 ‘실적 질주’를 거듭하고 있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그리 녹록지 않은 상황에 처한 게 사실이다.

올 초 미국이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사실상 반도체발(發) ‘제3차 세계대전’이 펼쳐진 가운데 최대 경쟁자인 대만 TSMC와 인텔 등은 쉴새 없이 투자 계획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점유율 1위인 TSMC는 2위 삼성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고 인텔은 단 넉 달 새 글로벌파운드리 인수 계획을 포함, 모두 500억달러(약 57조7000억원)란 대규모 투자를 공식화하면서 삼성을 쫓고 있다. 자칫 삼성이 일종의 ‘넛크래커’에 낀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경쟁자들 간 합종연횡도 활발하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 엔비디아는 작년 10월 400억달러(약 44조6000억원)를 투입해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을 인수했고 중앙처리장치(CPU) 업체인 AMD도 자일링스를 350억달러(약 40조원)에 사들였다. 최근엔 낸드플래시 업체인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이 일본 반도체기업 키오시아(옛 도시바 메모리)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경쟁자들이 몸집을 단단히 불리는 동안 삼성은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다. 지난 1분기 기준 삼성전자 유동자산(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 합계치)이 209조16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돌파했지만, 제대로 된 투자 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16년 80억달러(9조원)를 들여 자동차 전장 업체 하만을 인수한 게 마지막이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기 시작한 시기부터 조(兆) 단위 M&A가 실종된 셈이다. 5G 장비·스마트폰 분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스웨덴 통신 장비 기업 에릭슨이 삼성을 따돌리고 미국 이동통신사 버라이즌과 통신장비 공급 계약을 수주한 게 대표적 사례다. 삼성전자는 올 초에도 미국 T모바일과 AT&T의 5G 장비 수주전 뛰어들었으나 에릭슨·노키아에 밀리며 고배를 마셨다.

이를 두고 재계는 전형적인 ‘총수 부재’의 역기능으로 본다. 대규모 투자 결정은 ‘총수’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반도체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에 대한 적극적이고 빠른 의사결정은 총수 외엔 내릴 수 없다”며 “이 부회장이 가석방·사면으로 풀려난다면 삼성의 투자시계는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사회적 공감대는 ‘사면’인데…정치적 부담 때문?

현재로선 사면보단 가석방이 더 유력해 보인다. 여권의 넘버2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날(20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방문해 “이 부회장이 8월이면 형기의 60%를 마쳐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이 부회장의 가석방 시기를 명확히 언급했다. 송 대표와 함께 화성캠퍼스를 방문한 이재명 경기지사도 “(이 부회장이) 재벌이라고 해서 가석방이라든지 이런 제도에서 불이익을 줄 필요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가석방이 이뤄져도 이 부회장이 비상근 미등기임원인 만큼 경영 복귀는 가능하다. 다만,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에 따라 보호관찰, 거주지·해외 출국 제한 등이 불가피한 데다, 이사회 구성원이 아닌 만큼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자칫 경영에 주도적인 모습을 보였다가 ‘그림자 경영’에 나섰다는 오명에 휩싸일 수도 있다.

업계에선 만약 이 부회장이 사면을 받고 경영 현장에 복귀하면 삼성이 미루고 있는 170억달러(약 19조원) 규모의 미국 내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투자금의 종착지를 결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삼성은 대규모 투자 결정이나 인수합병 등에 대해 큰 의사결정을 하지 못했다. 특히 반도체 사업부문의 경우 투자가 지연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시선은 자연스레 문 대통령의 결단에 쏠린다. 청와대가 고심을 거듭하는 가운데 경제 5단체를 포함한 재계는 물론, 종교계·지방자치단체장·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까지 나서 사면을 건의한 데다, 국민 여론 역시 사면에 무게를 싣고 있는 만큼 이 같은 공감대를 거부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적잖다. 전지현 법무법인 참진 변호사는 “사면 목소리가 큼에도, 정치적 부담 때문에 가석방 쪽으로 가는 상황 같다”고 우려했다. 재계 일각에선 ‘8월 가석방·12월 사면론(論)’도 나돈다. 다만, 12월이면 여야 대선주자가 모두 확정된 상황인 만큼 문 대통령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결정하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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