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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카야·라멘집 가되 소주·국산재료 찾죠"…똑똑해진 日 불매운동

황현규 기자I 2019.07.25 17:14:22

한국인 운영 일식집 찾되 소주로…소상공인 피해 줄여
日기업 오해받는 韓기업 소개하는 사이트도 등장해
日여행객·제품 소비자 공개하는 SNS계정 자발적 폐쇄
"폭력운동 지양" 자정노력…"장기전 대비 부작용 최소화"

25일 낮 서울 마포구 한 일본 라멘집의 만석 모습. 이 식당은 일본불매운동 이후 일본산 재료를 국내산으로 교체해 손님들에게 홍보했다. (사진=김보겸 기자)


[이데일리 황현규 김보겸 기자]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직장인 안인경(30)씨는 요새 일본 제품을 사용하지 않지만 즐겨 다니던 이자카야(일본식 주점)는 꾸준히 이용 중이다. 다만 이 곳을 찾을 때면 일본 술 사케 대신에 우리 소주를 마신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매출은 올려주되 일본 제품은 보이콧 한다는 것. 안씨는 “일본 불매운동에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나름 머리를 굴렸다”고 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한 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똑똑한 소비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불매운동 와중에 소상공인 피해를 줄일 방법을 직접 강구하거나 본래 취지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감정적 대응을 지양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전으로 흐르는 불매운동의 부작용을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분석한다.

◇日식당 소주 소비량 2배 껑충…“한국인 피해 없도록”

이달 초 일본 불매운동이 시작된 이후 일식당 등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소비자들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소상공인을 위해 일식당을 방문하면서도 직접적으로 일본 수익에 도움이 되는 제품은 불매하는 식이다.

일식업계에 따르면 일식당에 방문하는 소비자들의 한국 술 소비가 최근 2배 이상 늘었다. 서울 마포구에서 일본식 주점을 운영 중인 이상원(48)씨는 “불매운동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찾아주는 단골들은 사케 대신 한국 전통주 `화요`나 소주를 주로 마신다”며 “원산지를 확인하고 음식을 시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씨는 이달 초 일본 보이콧 움직임이 시작된 이후 사케를 단 한병도 팔지 못했지만 한국 술은 불매운동 이전보다 두 배 넘게 팔았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라멘집도 마찬가지. 이 식당은 일본 불매운동 시작 이후 라멘 재료인 일본산 가쓰오부시를 한국산 해산물로 바꿨다. 식당 주인 이모(36)씨는 “불매운동 이후 일본산 재료를 즉각 바꾼 탓인지 손님이 별로 줄지 않았다”며 “오히려 손님들이 국내산 재료로 만든 라멘을 더 찾아주신다”고 설명했다.

불매운동으로 애꿎은 한국기업이 피해받지 않도록 소비자들이 직접 나서기도 한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 사이트 노노재팬은 일제로 잘못 알려진 한국 기업을 소개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생산지와 기업 구조 등으로 볼 때 일본기업으로 단정할 수 없는 기업들을 소개한다. △SKⅡ △와코루 △라이온코리아 △세콤-에스원 △감동란 △용각산 △더블하트 △마미포코 기저귀 △동아오츠카 등이 이 목록에 포함됐다.

노노재팬에 기업 정보 등을 적극 문의하는 소비자도 많다. 하루 평균 노노재팬에 접수되는 메일 문의는 200여건. 노노재팬은 공지문을 통해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브랜드에 대한 사용자(소비자) 의견을 모으고 잘못된 정보로 피해 받는 제품을 최소화하기 위한 해당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천 구월문화로상인회 회원들이 23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한 상가 밀집지역에서 열린 ‘일본 경제보복 규탄 불매운동 선언 행사’에서 일본산 차량인 렉서스 승용차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장기전 대비하는 소비자들…감정보단 이성으로

심지어 선택적 불매운동을 넘어 장기전에 대비하기도 한다. 불매운동의 취지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폭력적인 불매운동을 스스로 지양하는 식이다. 불매운동이 퇴색될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하자는 게 목적이다.

실제 지난 23일 인천 구월문화로의 한 상인이 8년 간 타던 일본 토요타의 렉서스 승용차를 직접 부순 뒤 거리에 전시했는데 이는 곧 치워질 예정이다. 이종우 구월문화로 상인회장은 “일각에서 해당 퍼포먼스가 과격해 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이 같은 불만들이 오히려 일본 불매운동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철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교통 혼란 등 문제도 있었다”며 “일본 불매운동을 응원하는 마음에 혹시나 모를 꼬투리 잡힐 것들에 대해서도 신경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제품 소비자들을 저격·테러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반대 여론에 부딪혀 폐쇄되기도 했다. 해당 SNS 계정은 일본 여행을 다녀오거나 일본 제품을 사용한 사용자들과 그 팔로어(Follower)를 공개해 왔다. 이 계정의 운영자는 “일본 제품 사용자를 팔로한 것이 무슨 잘못이냐”면서도 “이 정도로 큰 관심을 받을 지 모른 채 시작했기 때문에 계정을 삭제한다”고 언급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일본 불매운동이 장기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시민들이 공감하면서 자발적으로 무엇이 건강한 불매운동일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며 “소상공인 피해·폭력 운동 등을 최소화하면서 불매 운동의 애초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라며 최근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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