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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박삼구 전 회장이 확실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자구계획을 시장이 신뢰하고 채권자는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강구할 것입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금호그룹이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의 방안을 마련해서 채권단에 제출해야 합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금호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것은 박 전 회장이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강한 압박에 사실상 ‘백기투항’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3년 안에 경영 정상화에 실패할 경우’를 조건으로 내걸기는 했지만 ‘빅딜’을 입에 올린 그 자체로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재계는 아시아나항공를 두고 ‘박삼구의 페르소나’라는 호칭이 과분하지 않다고 볼 정도다.
박 전 회장 일가의 지분을 모두 주채권은행인 산은에 담보로 제공한 것도 “모든 것을 내놓겠다”는 오너 일가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관건은 채권단과 시장의 반응이다. 경영 정상화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될 만한 수준인지를 두고 추가 자금 지원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만에하나 신뢰 리스크가 여전하다고 판단할 경우 추가 자구안을 요청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朴, 아시아나 조건부 매각 가능성 첫 언급
10일 산업은행과 금호그룹에 따르면 금호 측은 아시아나항공의 조건부 매각 등을 담은 자구계획안을 지난 9일 산은에 전달했다. 양측이 지난해 4월 1년 한도로 맺은 재무구조개선 약정(MOU)이 만료되면서 이를 연장하기 위해 금호그룹이 추가적인 자구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 MOU 연장 여부는 아시아나항공의 생사가 걸린 일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시장의 신뢰를 잃을대로 잃은 만큼 자체적인 자금 조달 방안은 전무한 상황이다. 최근 영구채 발행에 실패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 와중에 산은과의 MOU가 연장되지 않을 경우 당장 신용등급 강등 리스크에 처할 수 있다. 이럴 경우 현재 ‘BBB-’에서 ‘BB’로 하향 조정되고 차입금 조기지급 사유가 발생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과 미래에셋대우 등에 따르면 현재 조기지급 조건이 붙은 자금만 장기차입금 2580억원, 자산유동화증권(ABS) 1조1417억원 등으로 추산된다. MOU 연장 실패는 곧 유동성 위기이고 이는 결국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의미다. 금호그룹 관계자들이 이번 자구안을 두고 “모든 것을 내놓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 중에서도 3년 기한을 조건으로 내건 매각안이 관심을 끈다. 시장에서는 이미 마땅한 회생 방안이 없다는 이유로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설이 돌았다. 인수 후보군으로 특정 대기업집단의 이름도 거론됐다. 다만 정작 산은 내에서는 매각 압박 등은 권한 밖이라는 얘기가 적지 않았다. 박 전 회장의 보유 지분을 전부 파는 정도의 강도는 돼야 한다는 관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복수의 산은 인사들은 “채권단이 깡패는 아니지 않냐”며 “서로 합의 가능한 수준에서 얘기되고 있다”고 했다. 산은은 국적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을 살려야 한다는 대전제를 깔고 이번 작업을 진행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박 전 회장이 직접 꺼낸 조건부 매각안은 그 강도가 약하지 않다는 평가다. 박 전 회장은 향후 경영 복귀는 없을 것이라고 공식화한 것도 “책임 질 것은 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읽힌다. 박 전 회장은 향후 3년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시아나항공의 운명을 걸게 됐다.
◇채권단·시장의 朴 자구안 수용 여부 관건
문제는 채권단이 이를 받아들일지 여부다. 산은이 MOU 연장을 위해 최근까지 물밑 조율을 해온 데다 박 전 회장이 빅딜 승부수를 던지면서, 수용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금융기관 차입보다 시장성 차입이 훨씬 많은 만큼 시장의 평가도 중요하다. 산은이 채권단 회의 전 자구안 요약본을 언론에 공개한 것도 시장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의중으로 풀이된다.
다만 금호그룹이 이번 자구안을 통해 당장 내놓는 것은 박 전 회장의 부인과 딸의 금호고속 지분을 추가 제공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평가도 없지 않다. 그 정도 자구안으로 5000억원의 자금을 지원 받고 3년의 시간을 벌겠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3년 안에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으로 경영권이 승계될 경우 사실상 경영 복귀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만에 하나 비판 여론이 비등해질 경우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한 채권단과 금호그룹의 ‘신경전’은 더 이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