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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EU 갈등 심화…美, 이란제재 면죄부 요청에 “유럽기업 예외없다”

방성훈 기자I 2018.05.14 15:58:40

볼턴 ABC·CNN 인터뷰서 유럽 대상 세컨더리 보이콧 예고
“對이란 제재, 유럽도 피해갈 수 없어…美, 준비완료”
트럼프, 철강·알루미늄 이어 유럽산 車에도 高관세 가능성
유럽, 이스라엘 美대사관 개관식 불참…美- EU 항공사 갈등 재점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사진=AFP PHOTO)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과 유럽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철강·알루미늄 관세폭탄으로 시작된 무역갈등이 최근 미국의 이란 핵협정(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탈퇴, 이스라엘 대사관 이전 등과 맞물리면서 오랜 동맹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美, 對이란 제재시 유럽기업도 포함…세컨더리 보이콧 예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3일(현지시간) ABC방송에 출연해 “유럽 기업들은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면서 “미국은 유럽 기업들에게 제재를 가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유럽 기업들의 ‘세컨더리 보이콧(제3국 제재)’ 가능성에 대해 “가능하다. 다른 나라 정부들의 행동에 달려있다”며 단독으로 대이란 제재를 시행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유럽 기업들이 이란과 거래하는 경우에도 제재를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유럽은 이(미국의 결정)를 따르는 게 궁극적으로 자신들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볼 때 이란의 경제 여건은 매우 불안하다. 따라서 (제재의) 효과는 상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이 우리가 협정을 탈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럽은 우리가 탈퇴했다는 사실과 엄격한 제재를 시행하기로 한 것에 매우 놀랐다. 이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될 지 두고보자”고 덧붙였다.

미국은 지난 8일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뒤, 앞으로 3∼6개월의 유예 기간 동안 단계적으로 대이란 경제 제재 조치를 복원시킬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후 미국 재무부는 이란 정예군인 혁명수비대(IRGC)가 운영하는 대규모 환전 네트워크와 관련된 기관 3곳과 개인 6명을 새롭게 제재한다고 발표했다.

반면 지난 2015년 미국과 함께 이란 핵협정에 합의한 독일, 프랑스, 영국 등 3개국은 기존 이란 핵협정을 수정·보완하는 방식으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굳힌 상태다. 미국 없이도 이란 핵협정을 유지하겠다는 것. 유럽 주요 지도자들은 미국의 결정 이후 지난 8~9일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부활시킬 경우, 이란 핵협정을 믿고 투자·사업을 진행한 유럽 기업들에게는 면죄부를 줘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아울러 유럽 기업들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덧붙였다.

유럽 기업들은 이란 핵협정 합의 이후 정유 업계를 중심으로 이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시장에 진출했다. 독일의 다임러와 프랑스의 PSA 푸조 시트로엥 등 일부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이란 파트너와의 제휴를 통해 시장에 진출했다. 독일 지멘스는 이란과 기관차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프랑스 에너지업체 토탈은 이란 근해 천연가스 탐사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유럽 최대의 항공·방산업체인 에어버스는 이란항공에 여객기 100대를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이들 기업은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가 복원되면 이란과 거래를 끊어야 하는 처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보다 강력한 제재 방안을 담아 이란 핵협정을 새롭게 다시 쓰고, 이를 유럽이 수용토록 만들기 위해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PHOTO)
◇美, 철강·알루미늄 이어 유럽산 車에도 高관세 가능성

미국과 유럽 간 갈등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조짐을 보여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해 취임 직후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들이 방위비 분담금을 충분히 내고 있지 않다며 비난했다. 그는 유럽 국가 대부분이 당초 약속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수준의 방위비 지출을 하지 않는다며 ‘무임승차론’을 주장했다. 당시 28개 나토 회원국들 중 GDP 대비 2% 합의를 지킨 나라는 미국(3.6%) 외에 그리스(2.4%), 영국(2.2%), 에스토니아(2.2%), 폴란드(2.0%) 등 4개국 뿐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최대 경제국인 독일에겐 유로화를 인위적으로 낮게 조작해 막대한 무역흑자를 올리고 있다고 공격을 퍼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유럽 순방당시 무역적자를 거론하며 독일을 “나쁘다”고 언급했다. 귀국 후 트위터에서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반복하며 독일을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에 익숙치 않았던 당시까지만 해도 ‘매우 나쁘다’라는 직접적 수사는 외교적 결례로 여겨졌다. 그는 이외에도 파리기후협약 탈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지지 등으로 유럽과 갈등을 빚어 왔다.

유럽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부정적인 시각은 올 들어 본격적인 무역정책으로 가시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초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은 철강·알루미늄 협상을 위한 유예기간을 당초 예정됐던 이달 1일에서 내달 1일까지 연기하고 EU와 여전히 협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수입할당제(쿼터제)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EU는 이에 맞서 쌀, 담배, 자동차·오토바이, 오렌지주스, 주방용품, 의류 및 신발, 세탁기, 섬유, 위스키, 메이크업 제품 등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연평균 28억유로, 우리 돈으로 약 3조70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유럽을 이끄는 주요 지도자 3명은 지난 달 29일 삼자 전화통화를 갖고, 미국이 관세 부과 결정을 거두지 않을 경우 보복조치를 취하겠다는데 뜻을 같이 했다.

그러나 미국은 위축되지 않고 유럽산 자동차에도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며 더욱 강경한 태도로 유럽을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백악관에서 자동차 대기업 임원들과 회동하며 수입산 차량에 20%의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산 자동차보다 배기가스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왼쪽부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사진=AFP PHOTO)
◇유럽, 이스라엘 美대사관 개관식 불참…美- EU 항공사 갈등 재점화

미국과 유럽은 최근 들어서는 외교적으로도 충돌을 빚고 있다. 미국은 14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개관식을 연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언급한데 따른 후속조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예루살렘을 국제도시로 인정한 70여년간의 유엔 합의를 깬 처사여서, 중동지역을 비롯한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유럽은 평화를 위협한다며 크게 반발했고, 대부분은 이스라엘에 설립된 신규 미국 대사관 개관식에도 자국 외교관들을 참석시키지 않기로 했다. 대표단을 보내는 곳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에 찬성했던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정도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미국과 EU가 충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주에 미국 정부와 EU 에어버스의 해묵은 논쟁에 대한 판결이 나와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보잉은 조지 워커 부시 전 대통령 시절인 지난 2004년 유럽 국가들이 에어버스에 매년 220억달러 규모의 불법 보조금을 지급해 회사의 연구개발과 확장을 지원하고 있다며 EU와 에어버스를 WTO에 제소했다. 당시 미국 측은 EU의 불법지원이 없었다면 에어버스가 보잉의 경쟁업체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르면 14일 WTO가 판결을 내놓을 것이라며, WTO의 결정이 미국과 EU 간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외교관 출신의 피터 체이스 독일 마셜재단 선임 연구원은 “WTO 판정이 미국에 매우 유리하게 나오면 철강 관세 부과라는 지렛대와 더불어 EU를 옥죄는 지렛대가 될 것”이라며 “미국과 EU간 긴장이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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