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사람은 사상 최대 호황과 불황을 몸소 겪은 자타공인 화학업계 대표 산증인이다. 대학 졸업 후 40년 가까이 한 회사에 몸담으며 석화업계 최고의 회사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48년 지기(知己)’ 절친이면서도 선의의 경쟁자였다. 서로 다른 경영 전략으로 경쟁하며 업계 호황을 이끌었다. 업계선 불합리하거나 격려가 필요할 때마다 한목소리 내며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는 평가다.
허수영 부회장은 박 부회장보다 한 해 먼저인 1976년 롯데케미칼 전신 호남석유화학 창립 멤버로 입사했다. 생산, 연구, 기술, 기획·신규사업 담당 등을 거쳐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샐러리맨 신화’로 통한다.
허 부회장은 2012년 호남석유화학에서 사명을 바꾼 롯데케미칼 초대 사장을 맡아 종합화학회사로 덩치를 키웠다. 또 그룹 내 다른 화학 기업 성장에도 일조했다. 특히 삼성 계열사였던 롯데정밀화학을 성공적으로 인수하고 에틸렌계 공장을 설립하는 등 한발 앞서 투자해 실적 개선에 앞장섰다. 그 공로로 롯데그룹 내 화학업체 세 곳을 총괄하는 화학BU장으로 승진했다.
평판도 좋은 편이다. 롯데 관계자는 “엔지니어 출신이라 화학업계에서 모르는 게 없는 전문가”라며 “직원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하고 소탈한 성품을 지녔다”라고 평가했다.
박진수 부회장은 1977년 럭키(현 LG화학) 공채로 입사해 여천 스티렌수지 공장장, 특수수지 사업부장, 고부가합성수지(ABS)·폴리스티렌(PS) 사업부장, 석유화학사업본부장 등 LG화학의 공장과 사업부장을 두루 거친 LG의 상징적인 경영자다. 특히 선제적인 투자로 배터리시장을 선점해 LG화학의 새 성장 동력을 일군 1등 공신으로 꼽힌다. 2011년 국내 화학사로서는 처음으로 매출 20조원 시대를 열어젖힌 주역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매년 역대급 실적을 경신한 배경으로 박 부회장의 ‘리더십’과 ‘뚝심 경영’을 꼽는다. “어떤 악재에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체질로 바꿔야 한다”는 시의적절한 투자도 먹혔다는 분석이다. 지난 5년간 사업구조 고도화와 바이오 및 소재 분야 등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로 LG화학의 위상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현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 부회장은 실제 현장을 체득한 경험을 토대로 경영 전략을 세웠다. 그는 경쟁업체보다 월등한 원가 경쟁력과 품질로 시장을 선도하려면 현장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봤다.
두 사람의 리더십 스타일은 경영 전략에서도 나타난다. 박 부회장은 주력인 화학 이외에도 전기차 배터리와 바이오 등 신사업을 동시에 강화하는 전략을 앞세우고 있는 반면 허 부회장은 ‘한 우물 전략’을 고수해왔다.
박 부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42년간 하고 싶은 일을 다 했다”며 퇴임 소회를 밝혔다. 그는 “한 직장에 들어와 42년간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라며 “회사도 탄탄히 해놓고 가니 아주 좋다”고 말했다.
허수영 부회장도 절친의 퇴임 소식을 먼저 접한 후 열린 한국석유화학협회 사장단 회의에서 “이제 나이가 다가오니까 준비를 해야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업계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두 CEO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언제나 업계 현안과 관련해서는 자사의 이익을 떠나 한 목소리를 내며 화합을 이끌었다”며 “업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분들이 동시에 떠나게 돼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허 부회장과 박 부회장 후임으로는 각각 김교현 롯데케미칼 사장이, 글로벌 혁신기업 3M의 신학철 수석부회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두 사람은 앞으로 후진 양성 및 경영 선배로서의 조언자 역할에 힘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