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데일리 박진환 이종일 정재훈 박일경 기자] 버스업체의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을 앞두고 파업 대란이 예상되고 있다. 노조는 노동시간 단축을 이유로 생활임금 보전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 카드를 내밀었다. 반면 버스업체는 요금 인상 없이 요구안 수용이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버스업계에서는 임금인상 등에 대한 노사 입장 차이가 있는 가운데 52시간제 적용은 이미 예견된 대란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시민단체는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 52시간제로 촉발된 임금문제
버스업계의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앞두고 버스기사의 임금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노조는 버스기사의 열악한 임금 여건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형편이 더 어려워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버스업계에 대해 1년 동안 유예했다. 이어 올 7월1일부터 300인 이상 버스업체의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한다. 내년 1월1일부터는 50인 이상 버스업체까지 52시간제가 확대된다.
노조는 52시간제가 적용되면 버스기사의 월급이 기존 350만~400만원에서 60만~100여만원씩 줄어 심각한 경제문제에 봉착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자동차노련)은 산하단체인 전국 지역노조 사업장의 찬반 투표를 거쳐 15일부터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1개 지역 노조 사업장 234곳이 사측과의 교섭이 진척되지 않아 쟁의조정을 신청했고 220여곳이 8~9일 파업 찬반투표를 벌인다. 이들 가운데 7월부터 52시간제를 적용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은 50곳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전국 버스업체에서 300인 이상 사업장은 80여곳이고 이중 30여곳이 서울에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전국의 규모가 작은 버스업체 대부분은 내년 1월부터 52시간제를 적용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52시간제를 적용한 서울과 300인 이상 버스업체가 1곳만 있는 인천은 올 7월 52시간제 영향이 거의 없다. 그러나 서울·인천지역 노조는 자동차노련의 52시간제 투쟁에 동참해 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서울지역 버스기사의 월급은 평균 394만원이고 인천지역 버스기사는 340만원 수준이다. 서울노조는 52시간제와 관련 없이 임금이 적다며 인상을 요구했고 인천노조는 서울보다 임금이 적다는 이유 등으로 반발하고 있다. 경기 버스노조는 52시간제 영향으로 월급이 350만원에서 70만원 정도 줄어들 것을 우려해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자동차노련 관계자는 “버스기사들은 시급이 낮아 한 달에 68시간씩 장시간 근무하면서 임금을 벌었다”며 “그러나 임금인상이나 생활임금 보전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어떻게 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7월부터 52시간제를 적용하는 사업장이 많지 않지만 내년 1월에는 대부분 업체가 52시간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이번 투쟁으로 52시간제에 대한 제도적 미비점 등을 정부가 개선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버스업체, 경영문제로 난색…정부는 소극적 대응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전국 버스업체 530여곳이 속한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연합회)는 난색을 표했다. 버스업체가 경영 문제로 수년 전부터 요금 인상과 특별재정 지원 등을 정부에 요구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노조의 쟁의조정 신청이 개별 버스업체나 지역별로 진행되기 때문에 현재 연합회의 역할이 제한돼 있다”며 “버스업체들도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노조 요구안을 수용하지 못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어촌 버스는 최근 3~6년 동안 요금 인상이 안 됐다”며 “임금 등 운영비는 계속 오르는데 버스업체의 부담이 가중됐고 여기에 52시간제 도입까지 돌덩이를 하나 더 얹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지역에서는 버스기사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 신규 인력 채용도 어렵다”며 “정부가 대책 마련에 함께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는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정부가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만큼 이에 대한 대책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며 “버스업계의 요구대로 정부가 곳간을 풀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권 팀장은 “버스업계 등을 52시간 근무제 예외업종으로 두는 것을 포함해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등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버스노조의 파업 투표는 주 52시간제가 핵심이 아니라 버스기사들의 임금 인상 요구가 강하게 반영된 것 같다”며 “지자체가 시내버스 요금을 인상해 문제를 해소하게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토부가 관할하는 M버스와 시외버스는 올 초 요금인상으로 버스업체 입장을 반영했다”며 “52시간제 적용과 관련해 지자체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