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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중 vs 서방 선택 기로…"새 통상질서 맞춰 공급망 다시 짜야"

김형욱 기자I 2022.03.03 18:21:02

美의 대러 강경 제재 동참 압력 여전…소재 수급 우려도
中 확산땐 선택 불가피 "신국제통상질서 형성 주도해야"

현대자동차 러시아 공장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우크라이나 사태가 촉발한 신냉전 체제로 우리 산업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미국 정부는 대(對)러시아 제재 동참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중국 대 서방의 대결 구도가 더 강해지리란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 중립외교 기조를 재검토하고 새 통상질서에 맞춰 산업공급망 역시 재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국 정부는 선택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러시아 제재와 함께 해외직접결제제품규칙(FDPR)을 이유로 우리 기업에 대한 직접 제재 가능성을 열었다. 스마트폰·자동차 등 우리 주력 제품 상당 수엔 미국의 설계나 소프트웨어가 들어가 있는 만큼 러시아에 수출하려면 미국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FDPR을 면제받은 32개 우방국에 준하는 최고 수준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직접 우리 기업의 수출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소비재는 예외`라는 미 상무부 답변을 이유로 우려 불식에 나섰으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군사 관련 사용자(Military End User) 대상이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렸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역시 2019년 전략물자라는 이유로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 소재 수입을 규제한 사례가 있다.

그렇다고 대러 제재에 마냥 동참하기도 어렵다. 러시아의 보복 조치 가능성도 있다. 스마트폰, 자동차 등 현지 진출 기업의 악영향은 물론 원자재 수급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네온, 크립톤, 크세논 등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희귀가스도 상당 부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이다. 이 두 나라의 수입의존도가 28~49%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현 국면이 러시아·중국 대 서방으로 확산할 조짐이라는 점이다. 우리 최대 교역국이자 핵심 원자재 생산국인 중국과의 관계 악화가 우리 경제에 끼칠 영향은 러시아와는 차원이 다르게 크다. 많은 국내 기업이 2017년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현지에서 철수하거나 현지 생산·판매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했다. 아울러 희토류 등 핵심 소재 수급 차질 우려가 커지기도 있다.

박정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신북방경제실장은 “러시아와 협력하고 있는 우리 기업 상당수는 큰 규모의 제조업이어서 단기적으로 투자를 철회하거나 협력을 중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우크라이나 위기를 둘러싼 러-미 관계 악화는 러시아와 중국 간 전략적 협력을 추동해 한반도에 새로운 냉전적 대립 구도를 조성할 개연성이 있으므로 종합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는 현 사태가 러·중 대 미·서방 갈등 구도로 굳혀질 가능성을 고려해 기존 중립외교를 재검토하고 새 통상질서에 걸맞은 산업공급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기순 성균관대 교수는 “미·중 경쟁의 심화와 디지털 통상 및 다자통상체제의 재편 등으로 국제통상질서의 변화가 이뤄지는 중”이라며 “통상문제를 경제안보의 틀에서 인식하고 신국제통상질서 형성을 주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면 우리도 우방국이 형성 중인 연합전선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번 기회에 미국과 동맹관계를 더욱 돈독히 구축해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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