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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기업에 퇴직자 자리 요구…기간·급여 등 결정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구상엽)는 업무방해와 공직자윤리법 위반 등 혐의로 정재찬(62) 전 위원장과 김학현(61)·신영선(57) 전 부위원장 3명을 구속기소했다고 16일 밝혔다. 검찰은 같은 혐의로 김동수(63)·노대로(62) 전 위원장과 지철호(57) 현 부위원장 등 9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자 12명 중 10명이 전직이며 지철호 부위원장과 김모 기획조정관(전 운영지원과장) 등 현직은 2명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의 핵심 혐의는 공정위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일감몰아주기 등 규제 및 제재 대상인 16개 대기업을 압박해 내부 승진이나 퇴직 후 재취업이 곤란한 이른바 4급 이상 ‘고참·고령자’ 등 18명을 임원급으로 채용토록 한 것이다. 검찰은 퇴직자를 채용한 대기업들은 입건하지 않았다.
공정위의 퇴직자 재취업 챙겨주기는 장기간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공정위는 고참·고령자 퇴직을 유도하기 위한 ‘퇴직관리 방안’을 세우고 부위원장과 운영지원과장 등이 기업 고위관계자를 직접 접촉해 퇴직자 일자리 마련을 요구했다. 공정위는 채용 기업과 대상자, 시기, 기간, 급여, 처우, 후임자 등까지 사실상 결정했다고 한다.
공정위가 퇴직자 재취업을 압박한 기간은 2012년부터 2017년으로 조사됐다. 이 기간 재취업자들 급여는 총 76억원 상당으로 연봉 3억 5000만원 수령자도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취업자는 실질적인 역할 없이 임원 대우를 받으며 억대 연봉과 업무추진비 수령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재취업한 퇴직자들이 공무원 정년 이후에도 기업에서 퇴직을 거부해 후임자가 갈 자리가 없으면 공정위는 해당 기업에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말라는 지침을 기획 및 하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공정위가 2017년 1월까지 20대 대기업 대부분에 공정위 퇴직자 채용을 강요했으며 지금도 일부 퇴직자가 이런 식으로 계속 근무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학현 전 부위원장과 지철호 현 부위원장의 경우 각각 2013년과 2017년 인사혁신처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심사를 받지 않고서 업무연관성이 있는 기관에 취업한 혐의도 받는다.
◇“국가 권력기관 조직적 채용비리…기업은 피해자”
검찰은 단순히 몇몇 관료의 일탈이나 전관(前官)예우 차원의 취업비리가 아니라 국가 권력기관 차원의 조직적 채용 비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수호를 위해 주어진 공정거래 위반 조사권한과 독점고발권 등 권한을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썼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정위가 막강한 규제와 제재 권한을 내세워 민간 기업들을 마치 산하기관처럼 인식해 분류하고 조직의 인사적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의 인사업무를 방해하고 고용시장의 자유경쟁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 사건 수사에서 퇴직자를 채용한 16개 대기업에 대해선 형사처분 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기업들은 업무방해의 피해자”라고 규명하며 “이번 사건에선 공정위의 조직적인 불법 재취업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다만 개별 기업별로 퇴직자 채용에 대해 조사무마 등 공정위와 대가관계가 있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검찰은 전했다.
일각에선 검찰이 불공정행위 사건에 대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을 목적으로 무력시위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검찰은 불공정행위 사건에 대해 공정위의 자체 조사 뒤 고발을 받아야만 수사를 할 수 있다. 검찰과 공정위는 전속고발권의 존속과 폐지를 두고 치열하게 싸워왔다.
검찰 관계자는 “공정위와 기업의 유착 가능성을 차단해 공정위의 엄정한 사건 처리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의 자율적이고 투명한 경영을 보장해 공정한 경쟁을 통한 일자리 확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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