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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 브리티시’ 서한 이틀 만에 역풍
발표 직후부터 영국 내 반발이 거셌다.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이 철강·에너지 인프라 분야에서 ‘바이 브리티시(영국산 구매)’를 촉구하는 서한을 장관들에게 보낸 지 불과 이틀 뒤에 나온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노동당 소속 리암 번 의회 사업통상위원장은 “정부가 ‘바이 브리티시’ 공약을 현실로 전환할 신뢰할 만한 계획을 갖추고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며 장관들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납세자가 새로운 전략 산업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면, 핵심 계약이 왜 해외로 넘어가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러스 스테이스 영국철강협회 사무총장은 “이번 결정이 매우 실망스럽다”며 “영국의 핵 르네상스는 영국에 일자리와 투자를 창출할 기회여야 하는데, 공적 자금을 동원한 뒤 경제적 가치를 해외로 수출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5억 파운드 들여 살려놓고 정작 소외”
업계의 불만은 구체적인 시설 하나를 향한다. 2021년 영국 정부가 핵잠수함 건조 역량 보존을 위해 국유화한 셰필드 포지마스터즈다. 이 시설은 원자로 압력용기에 들어가는 단조 부품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두산에너빌리티가 압력용기 전체를 제작하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 포지마스터즈는 부가가치가 낮은 주변 부품 공급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포지마스터즈 관계자는 “정부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 시설에 5억 파운드(약 1조354억원) 이상을 쏟아부어 놓고 정작 자국 SMR 공급망에서 소외시키는 것은 뒤틀린 결과”라고 했다.
사우스요크셔 지역 시장 올리버 코퍼드도 “지금 단계에서 생산의 핵심 부분이 해외로 이전된다면 한 세대에 한 번 있는 기회를 놓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첨단제조연구센터(AMRC)를 설립한 키스 리지웨이 교수는 셰필드 등 핵잠수함 제조 역량을 갖춘 도시들이 있는 영국이 SMR 세계 선도국이 될 ‘완벽한 위치’에 있다고 강조했다.
롤스로이스 “88% 영국 기업과 거래”…정부 목표엔 침묵
이 프로젝트에는 정부 기관 그레이트 브리티시 에너지와의 26억 파운드 계약과 함께 영국 국부펀드의 최대 5억9900만 파운드 추가 출자가 포함된다.
롤스로이스 SMR은 “2021년 사업 설립 이후 지출의 88%는 영국 기반 기업과 이루어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핵섬 부품의 영국산 비중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회사는 계약 수주 전인 지난해 2월 의회에서 “원자로의 최대 78%를 영국에서 제조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풍력 이어 원전도…英, 공급망 기회 또 놓치나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오는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1000기 이상의 SMR이 건설되고 누적 투자는 6700억 달러(약 1033조2740억원)를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영국이 해상풍력에서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경계감이 나왔다. 영국은 중국 외 세계 최대 해상풍력 시장을 보유하고도 자국 터빈 제조사를 키우지 못하고 수입에 의존하는 신세가 됐다. SMR의 경우 초기 공급망 구조가 굳어지기 전에 주도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만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정부는 “SMR 전체 설비에 걸쳐 공급망의 70%를 영국산으로 조달하겠다”는 목표를 유지하고 있다. 관건은 롤스로이스가 핵섬의 핵심을 해외에 넘긴 상황에서 이 목표를 어떻게 수치로 입증하느냐다. 영국 의회의 해명 요구에 정부와 롤스로이스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가 다음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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