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의무매입과 수입 보전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다 정부는 농민을 설득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농업4법 관련한 갈등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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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중심에 있는 양곡법은 쌀 생산량이 목표량의 3~5%를 초과하거나 가격이 5~8% 이상 떨어지면 정부에서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양곡법안은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의 첫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는데, 이번엔 양곡의 시장가격이 평년가격 미만으로 하락하면 차액을 지급하는 양곡가격안정제까지 포함됐다.
정부는 쌀 소비량 감소로 매년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면 농가에서 쌀 생산을 줄일 유인이 줄어 쌀값 하락이 심화할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법안대로면 매년 수조원에 달하는 혈세가 투입돼 스마트팜 확대나 청년 농업인 육성 등 농촌의 미래를 위한 투자는 어려워진다는 입장이다.
주요 농산물의 시장가격이 기준가격 미만으로 하락할 때 그 차액을 보전토록 하는 농안법안도 특정 품목으로 생산이 쏠려 수급·가격 변동성 심화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반대했다.
문제는 쌀값이 하락하며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정부가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회 차원에서 실행 가능한 대안을 추가적으로 논의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며 오히려 공을 국회에 떠넘겼다.
지난 15일 기준 산지 쌀값은 80㎏에 18만 5552원으로, 최저점을 찍었던 지난달 5일(18만 2700원)보다는 1.5% 올랐지만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20만원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는 양곡법 대신 쌀값 안정 방안으로 ‘쌀 재배면적 감축’을 밀고 있다. 당장 내년에 쌀 재배면적을 8만㏊ 감축하는 계획이다.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내년부터 시행, 각 시·도별 쌀 생산량 비중에 따라 감축 면적을 배분하겠다는 구상이다. 지자체에서는 다른 작물로의 전환 혹은 단수가 낮은 친환경 벼로 전환을 통해 면적 혹은 그에 상응하는 생산량을 감축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조차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정부가 목표로 내세운 8만㏊는 여의도(290ha)의 276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올해 전체 재배면적(69만 8000㏊)과 비교하면 당장 내년에 8.7%를 줄여야 한다. 정부에서 이미 지난해부터 논에서 쌀 대신 논콩, 가루쌀, 팥 등 전략작물을 재배하면 지원금을 주는 ‘전략작물직불제’ 도입 등 쌀 감축에 나섰음에도 쌀 재배면적 감소폭이 1%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목표의 현실성이 낮단 지적이다.
강력한 인센티브를 부여해도 부족할 판에 농가들의 참여를 이끌 유인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내년 쌀 재배면적 감축에 따른 인센티브로 ‘정부에서 매년 사들이는 공공비축미 배정 때에 우선 배정’만을 내놨을 뿐이다. 다른 작물로 재배를 전환하면 직불금을 1㏊ 당 최대 430만원 지급하지만, 벼 재배로 얻는 수익과 비교해 이 역시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한호 서울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쌀이 재배하기도 편리하고, 수익성도 높은데다 야당에서 ‘양곡법’ 같은 방패막을 만들어주겠다는 신호를 계속 주는 상황에서 누가 정부 말을 듣겠나”라며 “전략작물 직불금을 대폭 늘리는 등 농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에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 농민 100여명이 트랙터 20여대와 화물차 60여대를 몰고 와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하원오 전농 의장은 “윤석열이 물러나고 한덕수 체제가 들어선 뒤 가장 먼저 한 것이 양곡관리법 등 농민 관련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라며 “농민을 죽이는 거부권은 절대 안 된다고 호소했음에도 이 정부가 또다시 농민을 버렸다”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