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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지난 4일 심정지 상태로 센터장실에서 발견됐다. 윤 센터장의 사인이 과로사로 추정되면서 열악한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응급실 의료진의 부족이 업무 과중과 의료의 질(質) 저하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응급실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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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과중→인력 부족→다시 업무 과중…응급 의료 ‘악순환’
응급실은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해 환자들을 1차로 검진·치료하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1993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국민이 응급상황에서 신속하고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응급의료기관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7년 기준 전국에 △권역응급의료센터 36개소 △지역응급의료센터 116개소 △지역응급의료기관 264개소가 지정돼 있다.
그러나 응급실 의료진의 업무 강도가 다른 전공 의료진보다 높아 근무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이 의료계의 설명이다. 실제 대한응급의학회가 2015년에 발표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총조사에 따르면 국내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정식 근무시간은 주간 50시간을 넘는다. 특히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응급실 특성상 실질적인 업무 시간은 정식 근무시간의 2배 가량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앙 응급의료센터의 응급실 이용자 진료과별 현황을 살펴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찾는 긴급환자 수는 다른 과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2017년 한 해 동안 응급실을 찾은 환자(약 1040만명) 중 65%(약 683만명) 이상이 응급의학과 환자였다. 그 뒤를 잇는 내과(약 113만명) 환자보다 6배 가량 많다.
익명을 요구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응급의학과 업무가 힘들다는 인식이 있다보니 전공의 지원자도 다른 과에 비해 많지 않다”며 “업무 과중이 전문의 양산을 막고 다시 업무가 과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 윤 센터장의 죽음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 발표된 2019년 제62차 전문의 자격시험 최종 합격자 현황에 따르면 전체 전문의(3069명) 중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5.11%(157명)에 불과했다. 전공별 전문의 수가 △내과 16.8%(518명) △가정의학과 11.4%(351명) △마취통증의학과 8%(247명)인 것과 대조된다.
◇응급실 내원 환자 10명 중 4명 “진료 못받아”…다른 병원으로 이송도
문제는 응급실의 열악한 업무 환경이 의료진의 업무 과중을 넘어 환자의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점이다. 응급환자는 골든타임(치료 적정시간)이 중요하지만 열악한 응급실 환경 탓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김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응급실 내원 환자 550만 5430명 중 응급전문의의 진료를 받지 못한 환자는 37.7%(약 207만명)를 차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다시 옮기는 경우도 발생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은 2017년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2만 422명) 중 1.4%(285명)를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옮긴 이유로는 △응급 수술· 처치 불가능 △중환자실 부족 △병실 부족 등이 꼽혔다. 익명을 요구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의사의 과로와 업무 과중보다 더 큰 문제는 그 피해가 오롯이 환자들에게 간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명수 의원도 “응급환자의 경우 무엇보다 빨리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일을 줄일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의료진 확충을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송명제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현재 정부의 재정지원이 의료 장비·시설 확충 등에만 집중된 측면이 있다”며 “이런 관행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응급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진”이라며 “응급실 의료진 확충을 위한 정부 재원 지원과 함께 응급실 의료진을 둘러싼 열악한 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