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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행정법원은 한 성인용품 전문업체가 관세청의 리얼돌 수입통관 보류 처분에 대해 제기한 소송에서 업체의 손을 들어주며 리얼돌의 수입을 허용했다. 법원은 리얼돌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 개인 활동에는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길이라는 점 등을 수입 허용 이유로 들었다.
‘리얼돌 논란’은 이미 지난 2019년 한 차례 불거진 바 있다. 2019년 6월 대법원은 리얼돌의 국내 수입통관 보류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성인용품업체에 승소 판결을 내리고 수입을 허가했다.
이에 리얼돌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아동이나 실재 인물을 본떠 만들어지는 등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후 정치권을 중심으로 리얼돌에 대한 법적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아동 형상 성기구를 제작·판매할 경우 처벌하는 법안도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되는 등 관련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규제 공백 속에서 또다시 리얼돌 수입을 허가하는 법원이 판결이 나오며 합법과 편법 사이에 놓인 리얼돌이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이 구매해 집에서 사용하는 것은 개인 자유에 해당하더라도 이를 이용한 음란물과 성매매 영업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것.
실제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리얼돌 체험 후기’와 같은 영상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중에는 교복을 입은 리얼돌 등 청소년을 연상시킬 수 있는 리얼돌의 체험 영상들도 포함돼 있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리얼돌은 지인의 형상을 본떴을 때의 인격권과 초상권 침해 문제, 아동 형상 리얼돌이 아동 성폭력과 연결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며 “(법원의 판결은) 이런 여성의 성적 대상화 문화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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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을 활용한 ‘리얼돌 체험방’ 등 유사 성매매 사업 역시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리얼돌 체험방은 돈을 내고 일정 시간 동안 리얼돌을 대여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로 불법 오피스텔 성매매와 유사한 형태로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한 리얼돌 체험방은 자체 사이트에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전국 수십여곳의 지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유사 성매매에 해당하지만, 체험방을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는 상황이다. 현행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서는 성매매를 ‘불특정인을 상대로 금품 등을 수수하기로 하고 성교행위·유사 성교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리얼돌은 사람이 아닌 인형이기 때문에 체험방 역시 성매매 특별법에 따라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법적 공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김지영 교수는 “현재 리얼돌을 개인이 내밀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텔레그램에서 관련 음란물이 유포되기도 하고, 대여 업체들이 성행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이렇게 유통되고 소비되고 있는 리얼돌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제대로 된 규제나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수입 허용 판결이 났기 때문에 리얼돌 규제를 완전히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리얼돌 체험방 같은 경우는 이를 제재할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법원의 판결도 결국 개인의 재산권인 리얼돌 수입을 규제할 만한 근거가 없지 않냐는 것”이라며 “법무부나 여가부 등 관계기관에서 리얼돌에 대한 국민적 정서 연구를 통해 법적 공백을 해소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