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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지난 4~6일 발생한 강원 산불은 속도나 규모 면에서 최악이었다. 시속 30km에 달하는 강풍과 헬기진화가 불가능한 야간시간대에 발생한 화재는 이틀간 여의도 면적의 2배에 달하는 산림을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재난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을 보고 있자니 조금 과장해서 국제통화기금(IMF)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이 떠오른다. 재난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과 시민의식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민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관계기관이 모두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어마어마한 인재로 이어질 수 있는 화재 속에서 단 1명의 사망자만을 기록하며 피해를 최소화했다. 각계각층에서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복구를 위한 성금운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소방공무원들의 대응은 그 어느 조직보다 빨랐다. 소방청은 대응 1단계 비상발령 2시간 만에 최고 수위로 비상상황을 격상시켜 전국에 있는 가용 소방력을 총동원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소방차가 밤새 화재현장으로 달려와 주저없이 주불과 잔불 진화에 나섰다. 현장 출동 소방공무원 3251명, 단일 화재 역사상 가장 많은 872대의 소방차가 동원됐다. 밤새 진화 작업을 하던 한 소방관이 바닥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하는 한 장의 사진은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때리며 새삼 국가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에 응답하듯 화재발생 당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주세요” 제목의 청원글은 게시 나흘 만에 답변요건인 참여인원 20만명을 돌파했다. 청원인은 지난달 31일 본보의 ‘“국가가 지켜주겠다”더니 입법엔 하세월…말 뿐인 소방관 국가직화’ 기사 전문을 인용한 청원글을 통해 “소방을 지방직으로 두면 각 지방에서 각자의 세금으로 소방 인력충원과 장비마련을 하는데 상대적으로 지역 크기가 큰데도 인구는 더 적고 도시가 아니라 소득이 적은 인구만 모여있는 곳은 지역 예산 자체가 적어서 소방쪽에 줄 수 있는 돈이 더 적다”며 지방직으로 채용되는 현재 소방인력 구조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더 적은 예산으로 더 큰 지역의 재난과 안전에 신경써야하는데 장비 차이는 물론이거니와 인력도 더 적어서 힘들다. 꼭 국가직으로 전환해서 소방공무원 분들께 더 나은 복지나 또 많은 지역의 재난과 안전에 신경써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청원을 등록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2년 가까이 소방관을 지근거리에서 취재한 기자가 느낀 소방 공무원들의 현실은 답답함 그 자체였다.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총리, 장관까지 나서 소방관들의 처우개선을 강조하지만 정작 제도개선을 위한 법 개정은 이해관계자들의 이견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가 소속이 아닌 지방직인 소방공무원의 인사·예산권은 각 지자체장에게 있다. 임기가 정해져 있는 지자체장 입장에서는 소위 ‘사고만 안나면 티 안나는’ 소방력 확충보단 치적사업에 치중할 유인이 크고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데도 그저 권한이 줄어드는 게 두려워 국가직 전환을 반대한다.
소방공무원 자녀를 위한 변변한 어린이집조차 하나 없어 경찰에 남는 어린이집에 비집고 들어가야 하고 갓길에 정차 후 구조활동에 나섰다 교통사고로 숨진 소방관은 배상책임을 지는게 우리 소방관의 현실이다. 공무 중 사망한 공무원에 대한 예우를 규정한 공무원재해보상법은 지난해 4월에서야 겨우 제정됐다.
전문가들은 목숨 걸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소방관들에게 국가직 전환은 미흡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지방분권에 역행한다면 법·제도를 정비하고 다시 내려 보내더라도 지금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정족수 미달로 의결되지 못한데 이어 올 들어서는 임시국회 안건에서 연달아 후순위로 밀리며 논의조차 한 번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소방관 출신 국회의원이 전무해 비빌 언덕이 없어 국회에서 힘을 못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제 국민들이 호소하고 있다. 제 아무리 비빌 언덕 없는 소방관이라도 국민들이 응답했다. 부디 4월 국회에서 관련법 논의가 이뤄져 진영 행안부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밝힌 것처럼 소방관에게 “일한 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할 맛 나는 일터”를 만들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