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뉴스속보팀] 12억 가톨릭 신자들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81)이 사제에 의한 아동 성학대 은폐에 가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급기야 사퇴 요구까지 받는 등 즉위 후 최대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퇴위는 추호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일간 일 메사제로, ANSA 통신 등 이탈리아 언론은 29일(현지시간) 교황의 측근들을 인용해, 교황이 은퇴한 교황청 외교관인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77) 대주교의 의혹 제기에 “괴로워하고 있다”면서도 “퇴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가노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아일랜드 방문 이틀째인 지난 26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가톨릭 보수 매체에 보낸 서한을 통해 교황이 최근 성학대 추문에 연루돼 추기경직에서 물러난 미국 가톨릭계의 거물 시어도어 매캐릭(88) 전 추기경의 성학대 의혹을 즉위 초부터 알고 있었다며, 교황에게 사퇴를 촉구했다.
비가노 대주교는 이 서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 초인 2013년 중반, 당시 교황청의 미국 대사이던 자신이 이미 매캐릭 전 추기경의 일탈에 대해 보고했으나, 교황은 이를 무시해 결과적으로 그의 성학대 추문을 은폐하는 데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2009∼2010년 매캐릭 전 추기경에게 평생 속죄하고 기도하라는 징벌을 내렸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히려 그를 복권해 그에게 미국 가톨릭의 주교 임명에 영향을 미치도록 했다며 교황의 사퇴를 요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같은 날 아일랜드에서 로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겨냥한 이런 의혹에 관해 확인을 거부한 바 있다.
교황은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 기자들은 자신들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언론의 신중한 판단을 당부했다.
교황의 이런 결정은 자칫 이런 의혹에 반박할 경우 오히려 비가노의 주장이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상당수 가톨릭 관계자들은 비가노 대주교의 이번 의혹 제기가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직후부터 계속 이어져 온 가톨릭 보혁 갈등의 산물로 보고 있다.
교황에 대한 이번 공격이 가톨릭의 엄격한 교리보다는 자비를 강조하며, 동성애자와 이혼한 사람들을 포함해 좀 더 많은 신자를 포용하려는 교황의 철학에 공공연히 반기를 들어온 가톨릭 보수파의 음모라는 것이다.
비가노는 실제로 자신의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지지하는 진보적인 신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이 가톨릭의 전통 교리보다는 자비를 강조하는 교황의 접근 방식을 공격하기 위해 아동 성학대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진행된 수요 일반 알현에서 신자들 앞에 등장, 아일랜드 방문 후 공식 석상에 처음으로 나섰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아일랜드 방문에서 큰 기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아일랜드 교회가 과거에 아동 성학대라는 범죄에 올바른 방식으로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과 피해자들이 느낀 고통 등에 큰 괴로움을 느꼈다”며 주말에 이뤄진 아일랜드 방문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교황은 이어 “가톨릭 교회는 아동을 상대로 한 성직자들의 성학대를 막기 위해 충분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며 “교회는 성학대 희생자들을 돌보지 못했다”고 다시 한 번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