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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웠던 롯데월드타워 사무실에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롯데그룹 임직원들은 이날 평소보다 이른 시간 출근했다. 그룹의 총수인 신 회장을 비롯해 롯데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 롯데 직원들의 표정은 어두웠고, 출근길 발걸음은 무거웠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이날 신 회장의 재판 관련 업무 이외에 그룹의 해외 사업 등 일상적인 업무도 차분하게 이어갔다. 황 부회장은 지난 2월 실형 선고를 받고 구속 수감된 신 회장을 대신해 비상경영위원장으로 그룹을 이끌어왔다.
신 회장이 재판을 받을 때마다 법원에서 직접 현장을 챙긴 홍보임원의 전화기에선 불이 났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중요한 재판에 앞서 내외부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재판을 앞두고 법원에서도 현장 취재진의 동향을 살피며 기민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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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내 반전이 일어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지원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을것”이라며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것이다. 재판정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1시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황 부회장은 재판정을 빠져나오며 옅은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판결에 만족한다는 표정이었다. 홍보담당 임원 A씨는 “지난 8개월 동안 항소심 일정을 빠짐없이 챙겼다”며 “이번 재판에서 새롭게 주장한 사실이 일부 받아들여졌다”고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롯데그룹은 판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존중한다”며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사회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신 회장은 이날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와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앞으로 일 열심히 하겠다”고 짧게 소감을 밝혔다. 수감 생활을 하며 많이 야윈 모습이었지만 표정은 편안했다. 신 회장이 풀려난 건 구속 수감된 지 234일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