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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코로나19보다 실업 폭증이 더 큰 문제입니다.”
브라질의 주요 저가항공사 아줄(Azul)의 존 로저슨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코로나19 확산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다. 아줄은 브라질 항공업계에서 20% 가까운 점유율을 가진 대기업이다. 그럼에도 경제 여건이 취약한 신흥국으로서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은 인구(2억명 이상)가 많다 보니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한국보다 앞선 세계 9위다. 철광석, 구리 등 원자재 수출이 주요 먹거리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8785달러·2018년 기준)은 1만달러에 채 못 미친다. 최근 금융위기 조짐에 헤알화 가치부터 폭락하는 신흥국의 약점이 도드라지고 있고, 이에 산업계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해 1월말 이후 신흥국으로부터 빠져나온 증권자금은 950억달러(약 117조원)다.
◇-1.5%…신흥시장 첫 역성장 우려
코로나19 충격파가 신흥국으로 향하고 있다. 무려 69년 만에 첫 마이너스(-) 역성장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5일(현지시간) WSJ가 인용한 경제조사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 통계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신흥시장의 성장률 전망치는 -1.5%다. 1951년 조사 이후 69년 만의 첫 마이너스 성장이다. 이번 충격은 1980년대 남미 외채위기,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할 수 있다고 WSJ는 평가했다.
IHS마킷에 따르면 중남미 최대 발병지로 부상하는 브라질의 성장률 전망치는 -4.5%다. 문제는 브라질의 정책 여력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GDP 대비 정부부채는 75.8%(지난해 말 기준)다. 2008년 금융위기(58.6%)와 비교해 17.2%포인트 급등했다. WSJ는 “신흥국은 특정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정부가 기업을 지원할 여력이 부족하다”며 “예컨대 브라질과 멕시코는 실업보험조차 없다”고 했다.
미국과 인접한 멕시코의 성장률 전망치는 -8.0%(뱅크오브아메리카 예측)에 불과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가파른 침체 속도”라고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국가신용등급이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모두 ‘투기등급’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무디스는 최근 남아공을 당초 투자등급(Baa3)에서 투기등급(Ba1)으로 떨어뜨렸다. 신용등급 전망은 3사 모두 ‘부정적(negative)’이다. 국영전력공사(Eskom) 같은 국영기업의 방만 경영에 정부 재정이 대거 들어간데 따른 것이다. 남아공은 나아지리아와 함께 아프리카 내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세계 30위권)로 꼽힌다.
◇“신흥국 ‘투기등급’ 강등 줄이을듯”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몰린 아르헨티나는 코로나19 탓에 더 나락에 빠졌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채권자들과 채무재조정 협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주요 싱크탱크인 윌슨센터의 벤자민 제단 연구원은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무디스는 최근 아르헨티나의 국가신용등급을 Ca로 두 단계 강등했다. 단계인 최하 C보다 한 계단 높은 자리다.
캐피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그나마 경제 사정이 나은 한국(-3.0%), 러시아(-1.5%), 터키(-2.0%) 등도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해 보인다. 브라질, 멕시코, 남아공, 아르헨티나보다 경제 여건이 더 나쁜 다른 빈국들은 구제금융 없이는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남경옥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신흥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대두하는 상황에서 다른 중남미와 동남아 국가 등으로 신용등급 강등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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