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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안전성 OK로 독감백신 배송문제 끝 아냐

노희준 기자I 2020.10.07 16:42:46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맞아도 되는 거니?” 전날 상온에 노출된 신성약품 독감백신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질병관리청의 발표 직후 기자가 주위 지인들로부터 들은 얘기다.

정부의 ‘상온 노출’ 독감백신 검사 결과에도 시민들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사는 ‘안전성에 문제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운송과정에서 많은 구조적인 허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우선 배송 과정의 관리감독이 허술해질 수밖에 없는 운송에서의 하청과 재하청 관행이 실제 드러났다. 수도권, 강원, 충청 지역은 신성약품이 직접 의료기관과 보건소에 독감백신을 배송했지만, 호남과 영남은 두번의 운송 위탁, 즉 ‘하청-재하청’을 통해 의료기관과 보건소에 독감백신을 배송했다. 또 제주지역은 한번의 하청을 통해 독감백신을 전달했다. 백신 상·하차 작업이 야외에서 이뤄지면서 17만 도즈가 바닥에 적재됐던 지역이 바로 하청에 재하청이 이뤄진 호남이다.

백신 배송 과정을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한 것은 신성약품만이 아니라 보건소도 마찬가지였다. 3~4개 보건소는 직접 신성약품에 가서 독감백신을 수령했지만, 운송 과정 동안 백신 온도를 제대로 체크하지 않아 3만 도즈가 수거 대상이 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자동 온도기록 모니터링 장치 구비 규정은 백신 ‘보관’에만 있고 운송할 때에 대해서는 규정을 해놓지 못했다”며 “그런 것들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어제 브리핑에 여러 정부기관이 나선 것처럼 백신 관리감독 체계가 쪼개져 있다는 점이다. 백신 출하와 품질관리기준은 식약처 담당이지만, 배송 도매업체 허가와 행정처분은 지자체가 맡고 있다. 또 백신 보관과 수송 관리 가이드라인은 질병청과 식약처가 함께 만들었다. 감염병에 관한 총괄적 대응은 질병청 몫이다. 이러다보니 책임소재가 분명치 않고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하지만 어제 발표에서도 재발방지 대책은 뚜렷한 게 없다. 단지 “관계부처와 협의해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게 전부였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해외에서 비싸게 들여와야 할 코로나19 백신이 운송 및 보관 과정의 허점으로 물백신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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