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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겸재 정선(1676~1759)의 ‘화첩’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유찰됐다. 기대를 모았던 ‘국내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 경신에도 실패했다.
1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경매장에서 진행한 ‘7월 경매’에서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보물 제1796호)은 시작가 50억원을 호가하며 응찰자를 찾았지만, 끝내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추정가는 50억~70억원이었다.
지금껏 고미술품 최고 낙찰가는 2015년 12월 서울옥션 ‘제38회 미술품 경매’에서 35억 2000만원에 팔린 ‘청량산괘불탱’(보물 제1210호)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이 50억원 이상에 팔리면 ‘국내 미술품 경매 고미술품 순위’뿐만 아니라 ‘보물 경매 순위’까지 단숨에 바꿔버릴 수 있었다.
‘겸재 화첩’이라 불리는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은 2013년 보물 제1796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지난 5월 간송미술관이 출품했던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에 이은 ‘보물 문화재’의 경매 출현으로 세간의 관심을 한참 끌어올렸다. 시작가로만 볼 때도 ‘간송 불상’(2점 각각 15억원)보다 3배 이상 비싸게 출품한 ‘가치’도 화젯거리였다. 겸재의 회화 세계를 한눈에 살필 수 있고 조선 후기 산수화·인물화의 경향까지 가늠할 수 있어 작품성·역사성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결국 유찰이 되면서, 간송미술관으로 되돌아간 ‘보물 신라불상’과 같은 길을 걷게 됐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은 우학문화재단의 소유로 그간 용인대가 관리해왔다. 우학문화재단이 보물을 경매에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해 6월 서울옥션 ‘제152회 미술품 경매’에서는 보물 제1239호 ‘감로탱화’를 내놓기도 했다. ‘감로탱화’는 12억 5000만원에 낙찰됐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에는 겸재의 그림 총 16점이 들었다. ‘단발령’ ‘비로봉’ ‘혈망봉’ ‘구룡연’ ‘옹천’ ‘고성 문암’ ‘총석정’ ‘해금강’ 등 금강산과 주변 동해안 명소를 그린 진경산수화 8점의 ‘해악팔경도’와, ‘염계상련’ ‘방화수류’ ‘부강풍도’ ‘하외소거’ ‘횡거영초’ ‘온공낙원’ ‘무이도가’ ‘자헌잠농’ 등 중국 송나라 유학자의 일화·글 등을 소재로 그린 고사인물화 8점의 ‘송유팔현도’로 가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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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로 지정되기 이전에는 화첩 표지의 먹글씨를 따라 ‘겸재화’(謙齋畵)로 불렸다. 정확한 제작시기는 알 수 없으나 겸재의 노년기 작품으로는 짐작케 한다. 그림마다 ‘겸재’(謙齋)란 서명과 함께 정(鄭)·선(敾)을 각각 새긴 두 개의 백문방인(白文方印: 글자 부분이 하얗게 찍히는 도장)이 찍혔는데. 이는 겸재가 66세(1741)부터 70대 후반경까지 사용한 도장이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의 유찰로 한동안 ‘국내 고미술품·보물 경매 최고가’ 순위는 그대로 이어지게 됐다. 1위 ‘청량산괘불탱’(보물 제1210호)에 이은, 2위는 2012년 케이옥션 경매에서 34억원에 낙찰된 ‘퇴우이선생진적첩’(보물 제585호)이다. 3위를 기록하고 있는 ‘고미술품 순위’와 ‘보물 순위’는 갈린다. 고미술품에선 2019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31억원에 팔린 ‘백자대호’가, 보물에선 2015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18억원에 낙찰된 ‘의겸등필수월관음도’(보물 1204호)가 차지하고 있다.
이번 경매를 앞두고 4년 7개월 만에 찾아온, 고미술품의 최고가 기록 경신에 대한 기대가 적잖았다. 하지만 과도한 관심 등이 부담으로 작용한 듯 응찰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