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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통한 성장 위해선 ‘창조적 파괴’ 필요
13일(현지시간)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조엘 모키르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제학과 교수·필립 아기옹 런던정경대 경제학과 교수·피터 호위트 미국 브라운대 사회학과 교수 등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노벨 위원회는 수상자들이 기술 진보에 따른 경제 성장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가 창조적 파괴를 위한 혁신이 가능한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밝혀냈다고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수상자를 발표한 노벨경제학상 위원회 의장인 존 해슬러 스톡홀름대 교수는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삶의 수준은 세대 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새로운 발명으로 성장기가 있었지만 곧 사라지고 정체되고 말았다”면서 “지난 200년간은 기술 혁신의 연속적인 흐름 덕분에 경제가 성장했고 수백년 간의 정체에서 벗어났다”고 짚었다.
그는 “수상자들의 연구는 경제 성장을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없음을 보여준다”며 “우리는 창조적 파괴를 뒷받침하는 매커니즘을 유지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다시 정체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으로 대변되는 첨단 기술의 발전이 우리 경제와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이번 노벨경제학상은 우리 시대에 던지는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상자들의 연구 결과는 기술 발전과 성장 혹은 발전은 혁신을 장려하고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사회·제도적인 노력이 뒷받침될 때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
모키르 교수는 역사적 자료를 통해 혁신이 새로운 혁신으로 이어지며 성장으로 연결되기 위해선 사회가 새로운 아이디어에 개방적이고 변화를 허용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아기옹 교수와 호위트 교수 역시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을 건설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제언했다.
아기옹 교수는 수상 발표 이후 노벨위원회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속 성장 모델의 붕괴 위험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최근 세계적으로 각국이 경제 개방 대신 보호무역·관세 등 장벽을 높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것은 성장의 장애물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이 커질수록 혁신자가 누릴 기회와 아이디어 교환, 기술 이전, 경쟁이 늘어나 성장에 도움이 된다. 반대로 개방성 저해는 오히려 성장을 막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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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노벨경제학상…韓 수상은 언제쯤
노벨 경제학상은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다른 5개 부문에 더해 1969년부터 수여돼 온 상이다. 스웨덴 중앙은행이 창립 300주년을 기념해 1968년 노벨재단에 기부한 출연 재산을 기반으로 제정됐다.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으로, 일부에선 엄밀한 의미에선 노벨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노벨 경제학상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지적도 받는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장인 밀턴 프리드먼이 1976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면서 1969년 이후 17년 동안 수상자 통계를 분석한 결과 △남자 △미국인 △시카고대학 출신을 노벨상 수상에 유리한 조건으로 꼽은 바 있다. 이후 반 세기가 흘렀지만 수상자들의 출신 대학이 미 명문대 일부로 확대된 것 외에 이 조건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특히 여성 학자에게는 문턱이 더 높다. 올해까지 57차례에 걸쳐 99명의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여성은 엘리너 오스트롬(2009년), 에스테르 뒤플로(2019년·공동 수상), 클라우디아 골딘(2023년) 등 단 3명이었다.
노벨 경제학상의 평균 수상 연령은 약 67세로, 노벨상 전체 분야 중에서도 가장 높은 편이다. 2019년 수상 당시 46세였던 뒤플로 교수가 최연소 수상 기록을 갖고 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한 가지 분야를 깊게 파고들 수 있는 학문적·문화적·제도적 토양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매년 결과를 내야 하는 문화에서는 노벨상 수상과 같은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지난해 소설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지만 아직 과학 분야에서는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노벨상의 경우 연구 발표시점으로부터 수상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 기초연구와 순수과학에 대한 꾸준한 지원과 사회적인 신뢰가 구축돼야 한다는 제언도 잇따른다.
한편, 경제학상을 끝으로 지난 6일 노벨생리의학상으로 시작됐던 올해의 노벨상 시즌이 마무리됐다.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증서와 금으로 만든 메달, 1100만크로나(약 16억 5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시상식은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에 열린다.
앞서 발표된 올해 수상자는 △생리의학상 메리 브랑코·프레드 람스델·사카구치 시몬 △물리학상 존 클라크·미셸 드브로에·존 마르티니스 △화학상 기타가와 스스무·리차드 롭슨·오마르 야기 △문학상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평화상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