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동안 쌀 3300포 기부한 얼굴없는 성북구 천사

김기덕 기자I 2021.01.27 15:47:26

2011년부터 선행 11년째 이어온 성북구 주민
쌀 무게 66t…가격만 총 1억9800만원 규모
“어려운 이웃 도와달라” 짤막한 전화로 알려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얼굴 없는 기부천사가 신축년인 올해에도 어김없이 성북구 월곡2동 주민센터에 20kg 포장쌀 300포를 보냈다. 지난 2011년 겨울부터 시작해 올해로 11년째. 그동안 보냈던 쌀의 양만 총 3300포, 쌀 무게 66t(톤), 싯가 1억9800여 만 원에 이른다. 올해에도 이 기부자는 “어려운 이웃이 조금이나마 든든한 명절을 날 수 있도록 잘 부탁한다”고 당부한 짤막한 전화를 남기고 본인 신분은 밝히지 않았다.

27일 새벽 얼굴 없는 천사가 보낸 20kg 포장쌀 300포를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이승로 성북구청장(사진 가운데)이 쌀을 내리고 있다.
27일 새벽 익명의 기부자가 보낸 쌀 300포를 실은 트럭이 월곡2동 주민센터 앞에 도착하자 주민센터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동선을 정리하면서 거리두기 준수를 안내했다. 코로나19 상황이라 쌀을 나르는 인원도 대폭 줄이고 별도의 행사도 생략했다. 마스크를 쓴 채 예년에 비해 두세 배의 쌀을 나르다 보니 안경을 쓴 사람들의 렌즈에는 김이 가득 서리기도 했다. 하지만 보람찬 미소는 숨길 수 없었다.

천사의 전화를 받은 월곡2동 주민센터는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박미순 월곡2동장은 “올해는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인 만큼 천사가 쌀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면서 “어려운 상황에도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는 것에 대한 존경과 감사 그리고 천사의 안부를 확인한 것에 안도하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제 천사의 쌀 300포를 실은 트럭을 맞이하고 쌀을 내리는 일은 이제 월곡2동의 큰 행사가 되었다. 해마다 천사의 쌀이 도착하는 새벽이면 월곡2동 주민센터 앞은 공무원 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 산책하던 주민 등 100여 명이 일렬로 서서 쌀을 나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올해는 이승록 성북구청장도 힘을 모아 쌀을 옮기는 일을 거들었다.

성북구에서는 기부 천사를 따라 나눔에 동참하는 사례도 이어졌다. 쌀과 금일봉 뿐 아니라 지역 어르신 100명은 ‘100인 어르신 1만원 나눔’을 진행했다. 나눔에 동참한 한 어르신(76·월곡2동)은 “동네 독거노인 대부분이 천사가 보낸 쌀을 받는다”며 “마을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고령자로서 천사처럼 작은 행복이라도 나누기 위해 지역 노인 100명이 1만원씩 모으기에 참여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월곡2동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소외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또다시 다른 이를 돕는 선행의 선순환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소외이웃을 더 잘 살필 수 있도록 적극적인 행정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27일 얼굴 없는 천사가 보낸 쌀 300포를 내린 후 이승로 성북구청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과 주민, 지역 관계자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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