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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들뜬 K바이오, 냉정해지자

노희준 기자I 2020.01.20 16:41:35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정확한 지적이에요.”

최근 사석에서 만난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 발언이다. ‘미국 본토에서 바라본 K바이오의 위상’을 두고 서광순 재미한인제약인협회(KASBP)장과 나눈 얘기를 전해주자 돌아온 말이다.

서 회장은 “(미국에서) 한국 바이오를 보는 눈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며 “한국 임상 결과를 인정한 것도 2013~2014년 무렵”이라고 했다. KASBP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1500명의 한인 제약인의 모임이다. 기업, 학계, 연구소 소속 사람들로 현지 사정에 정통하다.

이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서 회장은 세계 제약업계 ‘톱50’(매출액 기준)에 올라와야 현지 레이더망에 잡히고 ‘톱20위’안에 들어야 주의를 기울여서 본다고 했다. 2018년 국내 제약 1위 유한양행은 1조5000억원의 매출로 톱50위의 ‘꼴찌’(50위) 미국 페링의 매출 2조6000억원보다 1조원이 적다. 세계 20위 일본 다케다사는 15조9000억원 매출로 유한양행의 10배를 넘는다.

연구개발(R&D)투자 규모를 봐도 갈 길이 멀다. 국내 제약 바이오기업이 2018년에 투자한 연구개발비는 2조5047억원이다. 세계 1위 화이자는 혼자 이 금액의 3.5배를 넘는 8조8400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썼다. 이는 국내 상장 제약기업 최다 R&D 지출 기업인 셀트리온(068270) 연구개발비 2889억원의 31배 수준이다. K 바이오가 얼마나 더 오랫동안 노력해야 하지는 알 수 있는 대목이다.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 이후 자사 성과를 자화자찬하는 얘기가 많다. 기술수출 등 실제 성과로 이어지는 일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건 개별 기업의 성과지 그 덕으로 K바이오의 기초체력이 단번에 올라가진 않는다. 기술 수출된 후보물질이 반환되는 일도 다반사다. K 바이오를 과소평가할 필요도 없지만 과대평가도 경계해야 한다. 유전자 치료제 성분이 뒤바뀌고 임상 3상에서 어이없는 실수가 나왔던 게 고작 6개월 전이다. 설레발을 뒤로하고 냉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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