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달 19일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을 찾았다. 네이버 동영상의 거래상 지위 남용에 대한 심의가 열린 날이다. 통상 법무법인 변호사나 임원을 대리 출석시키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었다. 그는 엠파스 검색사업본부장 NHN 검색품질센터 이사를 할 때 경험을 얘기하면서 검색 품질 향상 차원에서 서비스 변경이지, 결코 자사 서비스를 우대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다른 일정으로 참석이 어려웠던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도 심의 날짜를 변경하면서까지 심판정에 참석해 질의를 던졌다. 그는 “네이버가 네이버TV에 검색 우선순위를 부여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콘텐츠에 접근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품질 개선이냐”며 쏘아붙였다. 국내 플랫폼 1위 기업을 이끄는 CEO와 독과점 남용을 막는 경쟁당국 수장 간의 힘 겨루기를 보여준 한 장면이다.
◇공정위 “자사서비스 우대해 경쟁자 배제”
공정위는 네이버가 쇼핑·동영상 분야 검색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검색 알고리즘을 인위적으로 조정·변경해 자사 상품·서비스를 검색결과 상단에 올리면서 경쟁자를 배제한 혐의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267억원(쇼핑: 265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6일 밝혔다.
네이버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상품정보를 네이버쇼핑 안에서 비교할 수 있는 온라인 비교쇼핑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나와, 카카오, 에누리 등도 같은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네이버의 시장 점유율은 70% 이상에 달하기 때문에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한다.
네이버는 동시에 상품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거래가 이뤄지도록 하는 오픈마켓 서비스도 제공한다. 2012년 샵N을 출시하다 2014년 스토어팜으로 서비스체계를 일부 전환하고 현재는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다양한 쇼핑몰을 동등하게 노출해야 하는 네이버가 자사 오픈마켓인 스마트스토어를 우대했다는 점이다. 심판이 직접 선수로 뛰면서 가점까지 준 셈이다. 비교쇼핑 서비스의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자사 서비스를 우대했다는 게 공정위가 적용한 혐의의 핵심이다.
네이버가 활용한 툴은 알고리즘 변경이었다. 네이버는 총 5차례에 걸쳐 △경쟁 오픈마켓 랭킹 가중치 하향 조정 △자사 오픈마켓 노출비중 보장 및 확대 △자사 오픈마켓 판매지수 가중치 부여 △검색 다양성 명분으로 동일몰 상품 배제 △자사 오픈마켓 노출제한 완화 등의 방식으로 알고리즘을 변경했다.
공정위는 알고리즘 변경으로 인해 네이버 오픈마켓 상품의 노출 비중이 증가하고 경쟁 오픈마켓 상품의 노출은 감소했다고 봤다. 2015년 3월 네이버 쇼핑 내 자사 오픈마켓의 노출점유율(PC기준)은 12.68%였지만 2018년 3월 26.20%로 올라선 반면 다른 오픈마켓의 점유율은 -1.37%~-3.87%포인트 감소했다.
동영상 분야 역시 네이버가 자사 서비스인 네이버TV를 우선 노출한 혐의다. 네이버는 검색알고리즘을 개편하면서 ‘키워드 입력 가이드’를 만들고 네이버 TV 사업부서에 알려줬다. 반면 네이버는 아프리카TV나 판도라TV 등에 키워드 중요성뿐만 아니라 알고리즘 전면 개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여기에 네이버TV 테마관을 만들어 네이버TV 플랫폼을 활용한 동영상에는 직접적으로 가점을 부여해 우선 노출시켰다. 네이버는 저작권 문제가 없는 양질의 콘텐츠를 입점시키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공정위는 네이버TV 플랫폼을 쓴 동영상만 가점을 받아 테마관에 입점할 수 있고 경쟁 동영상은 품질이 좋더라도 가점을 받지 못해 입점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네이버는 공정위 제재 결과를 보고 무려 6700여자에 달하는 반박자료를 낸데 이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검색 중립성이 생명인데 이번 공정위 제재로 신뢰성에 크게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네이버는 쇼핑·동영상 부문을 넘어 뉴스편집, 실시간검색어 관련 조작 논란에 늘 휩싸이고 있다.
네이버의 반박 논리는 크게 3가지다. 이미 시장이 변화하면서 비교쇼핑 서비스와 오픈마켓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는데 공정위가 지나치게 획일적으로 시장을 획정했다는 것이다. 오픈마켓까지 시장을 넓게 보면 네이버의 거래비중은 전체 시장에서 14.8%에 그치는 터라 지배력도 없고 남용도 하지 않았다는 논리다. 공정위는 지난 2006년 네이버의 동영상 시장에서의 지배력 남용에 칼을 댔지만, 대법원은 시장 획정이 잘못됐다며 네이버의 손을 들어 준 바 있다.
알고리즘 변경 역시 다양한 사업자가 검색 결과에 나오는 등 검색 품질 향상 및 콘텐츠 다양성 차원이라고 반박한다. 아울러 스마트스토어의 점유율이 올라간 것은 검색 우대가 아닌 네이버 페이 등 편의성 확대로 인한 혁신의 결과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네이버 측은 “알고리즘 변경 일부 사항에 대해 공정위가 악의적으로 자사 서비스를 우대했다고 지적을 했다”면서 “공정위가 충분한 검토와 고민없이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본질적으로 침해했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공정위는 내부 이메일 등을 통해 네이버가 자사서비스를 우대하려고 했던 정황 및 증거자료를 상당수 확보했다며 네이버가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형 로펌 관계자는 “온라인 플랫폼은 워낙 빠르게 변화하고 여러 개념이 혼재돼 있어 경쟁당국이 나쁜놈 착한놈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검색품질 향상이라는 명분은 있겠지만, 공정위 말대로 자사서비스를 우대한 명확한 증거자료가 인정된다면 네이버가 소송에서 이기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