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산업 위기·패러다임 전환에…부품업계 줄도산 우려

이소현 기자I 2019.07.04 18:27:58

車 10대국 중 한국만 후진..부품업체 타격
최저임금 인상·주 52시간 대응 어려움 토로
높은 대출금리·까다로운 금융조건 해소 필요

4일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열린 ‘제3회 자동차산업 발전포럼’에서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한국자동차산업협회)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벼랑 끝에 몰린 국내 중견·중소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도움의 손길을 호소하고 나섰다. 완성차업체의 생산량 둔화로 일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 노동시간 단축으로 경쟁력이 약화해 악순환에 처한 업계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다.

미래자동차 시장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최근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까지 더해지며 거센 도전에 직면한 자동차 부품업계가 경영악화로 인해 급격히 고용감소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車 10대국 중 韓만 후진”…부품업계 타격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4일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자동차 부품산업의 현황과 발전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제3회 자동차 발전포럼에서 “국내 부품업체들의 경쟁력은 르노, GM 등의 세계적 업체들이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알려졌다”면서도 “완성차업체들의 국제 경쟁력을 뒷받침하며 튼튼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부품업체들이 어려움에 부닥쳤다”고 위기론을 역설했다.

실제 자동차 산업은 부품·소재 등 전후방 연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커 완성차의 위기는 곧바로 부품산업의 위축으로 연결된다.

부품산업의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는 자동차 생산 감소에 있다. 지난해 자동차 생산은 403만대 규모로 2010년 이후 최저수준이다. 올해는 400만대 이하를 밑돌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김준규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조사연구실장은 “중국과 미국 등 10대 자동차 생산국가 중에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4년 연속 생산량이 줄었다”며 “2016년 인도에 5위 자리를 내어준 후 2년 만에 또다시 멕시코에 밀려 7위로 하락했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전반적으로 성장이 정체한 것도 문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완성차 5개사의 개별기준 매출액은 2011년 93조3000억원에서 지난해 93조5000억원으로 정체”라며 “영업이익률은 하락세고, 한국GM과 쌍용차는 적자”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자동차 산업 불황에 부품업체의 경영실적은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부품업체 영업이익은 약 1조8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5.4% 줄었으며, 영업이익률은 1.9%에 그쳤다. 자동차 부품 수출액도 2014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자동차 부품 수출액은 231억 달러로(수입 54억 달러)로 2014년 280억 달러를 정점으로 계속 줄었다.

미래자동차 시장 패러다임이 급속하게 변한 것도 부품업계 위축을 심화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부품수는 내연기관은 3만개 수준인 반면 전기차는 1만9000개, 수소차는 2만4000개다. IBK경영연구소는 친환경차 시대가 가속화하면서 엔진, 변속기, 오일류, 연료탱크 등 국내 자동차 부품사의 28%인 2886개사에 부정적인 영향끼칠 것이라고 밝혔다. 김주홍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정책기획실장은 “세계 전기차 시장은 연평균 40% 성장하고 2030년 판매비중은 21%를 차지할 것”이라며 “친환경자동차 시장 확대로 기존 자동차 시장은 더욱 위축되고, 자동차 부품업체의 위축도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자동차 산업 고용인원도 쪼그라 들었다. 2017년 말 기준 40만1000명에서 지난 4월 38만5000명으로 불과 1년4개월 만에 1만6000명이 감소했다. 김 정책기획실장은 “1차 협력업체 수는 지난해 20개가 줄어 고용인원은 8000명이 감소했다”며 “부품사의 경영악화로 인해 급격히 고용감소가 이어지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4일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열린 ‘제3회 자동차산업 발전포럼’에서 협회와 학계, 업계, 연구계 등에서 참여한 관계자들이 토론하고 있다.(사진=한국자동차산업협회)
◇최저임금 인상·주52시간…가장 큰 애로사항

벼랑 끝에 몰린 국내 중견·중소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가장 먼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완성차업계 부진으로 경영이 여려워진 가운데 급격하게 바뀌는 제도에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이날 경기도와 대구, 인천, 울산 등 4개 지역 33개 기업에 대한 심층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설문 조사 결과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인건비 부담(29%)을 꼽았다. 특히 협력사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으로 인한 경영악화(38%)와 신규투자가 위축(22%), 고용감소·위축(14%) 되고 있다고 답했다.

심지어 일부 부품업체에서는 최저임금 상승으로 외국인의 임금이 내국인을 넘어섰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5년 차 내국인 근로자의 임금이 3~4개월차 외국인과 비슷해졌다”며 “내국인 근로자의 근로의욕저하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임금격차에 제조 공장 기피현상으로 내국인 채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로제도 대응 준비도 미흡하다고 토로했다. 1차 협력사는 작업시간 조정으로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2~3차 업체들은 속수무책이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현행 3개월인 탄력근로제도를 1년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운영자금과 관련해서는 높은 대출금리(29%)와 까다로운 금융조건(29%)이 가장 어렵다고 응답했다. 김보수 중견기업연구원 부원장은 “일부 중견회사들은 해외 완성차 브랜드로부터 부품 수주를 진행하고 있지만 수주 조건과 자체 투자금 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문수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상근이사도 “자동차 부품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게 아니잖나”며 “금융기관은 신용등급이 B등급 이상이면 자금대출 조건을 완화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속세도 부품업체에 지속적인 투자와 세대교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의 최고 상속세율은 50%로 세계 주요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김치환 삼기오토모티브 대표는 “상속세가 징벌적 수준으로 높아 가업 승계보다 회사를 팔아 현금을 물려주는 게 낫다고 판단할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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